“제정신이야? 정말 말이 안 돼요.”
권사님은 내게 하소연을 했다. 남의 집 귀한 청년에게 복음을 전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청년을 사랑한다고 한다. 사랑은 이상이고 생활은 현실인 것을 모르는 육신이 멀쩡한 자들도 이런저런 문제로 혹은 성격 차이라며 빈번하게 갈라서는 데, 사지 멀쩡한 준수한 청년이 하반신불구로 앉아 사는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니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신체 결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 도움 없이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남자의 프러포즈를 당연히 거절해야 하는데, 딸이 양심 없는 짓을 한다며 결혼을 말리는 권사님은 딸의 불행을 예상한다며 내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딸에게 정신 차리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막무가내니 어찌한단 말이에요?”
30대까지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왔으니, 삶이 얼마나 고달픔의 연속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누가 도와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여자를 누가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부탁해요. 원장님! 원장님은 예전부터 우리 집 형편을 잘 알고 있으니 날 좀 도와줘요. 나는 요즘 수면제로 살아가요. 은혜 갚을게요! 예수님을 전했다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그 집에선 우릴 원수로 알 텐데요. 무신론자의 가문에 여자와 교제해 본 적이 없는 순수한 남자를 전도했다더니 사랑에 빠졌다네요. 세상이 웃을 일이지요. 불행이 눈앞에 훤한데 어미 된 제가 어찌 보고만 있겠어요. 결혼만은 안 돼요. 어리석음이에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시각장애인이 돼버렸으니 어찌할까요? 그 집에선 내 딸을 저주해요.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권사님은 절절한 심정으로 아침저녁 전화를 하시더니, 나중에는 아예 미용실로 찾아와서 호소했다. 나 역시 세 자녀의 엄마로서 충분히 공감하며 그분의 입장이라면 분명히 통곡하며 말렸을 텐데, 나는 안타까운 심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에 이른다 해도 결혼 이후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권사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두 남녀의 사랑이 하늘 끝에 닿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성사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어려움이 덮친다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성혼이 될 것이라 믿으시고 기도하시면 안 될까요”라며 위로했다.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까지 하루 한 끼씩이라도 금식하고 매달리며 기도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지 않을까요?”라고 금식기도를 권유하기도 했다.
“사실은 부모님의 생각에 앞서 가장 절실한 것은 따님의 생각이 아닐지요?”
권사님은 내 손을 붙들고 애걸을 하셨지만, 나의 위로의 말이나 권면의 말에는 마음을 열지 않으셨다. 권사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나는 H 자매에게 어머니의 말을 권고하지 못했는데 내 행동에 서운하셨는지 한동안 연락이 없으셨다. 결국, 그 어머니는 딸의 결심이 굳어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남편인 장로님과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음으로, 결혼식을 한 달쯤 남겨두고 권사님은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눈물은 향유다>
-김국애
눈물은 두 눈에서 흐른다
한쪽 눈만 우는 일이 없다
언제나 눈물은 함께 흐른다
눈물보다 더 진실한 우정도
눈물보다 더 진솔한 고백은 없다
엄마의 양수 같이 성결하고
거짓 없는 눅진하고 진득한 눈물
영원한 우정도 사랑의 맹세도
눈물보다 더 진한 맹약은 없다
두 눈의 눈물은 진실을 묶어
천상으로 보내는 눈물은 절규다
머나먼 하늘 길 수만리에
황금길 내는 눈물은 불도저다
하늘 그 위의 하늘 끝 종착역에
내 눈물은 신의 손위에 향유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