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책 불확실성과 완성차업체의 전략 변화가 겹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2분기 실적 전망조차 쉽지 않은 안갯속 국면에 접어들었다. 업황의 구조적 성장세는 유지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수요 흐름이 뚜렷하지 않아 업체별 실적과 주가의 차별화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1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불확실한 전방 수요에 대응해 2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보수적으로 제시하거나 방향성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30일 열린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일정 수준의 2분기 매출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SDI 역시 지난달 25일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관세 변수로 2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면서도 “전분기 대비 개선은 기대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 같은 기조는 전방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수들 때문이다. 유럽은 지난 3월 CO₂ 배출 규제를 3년 유예하며 전기차 의무판매 정책을 완화됐다. 이에 따라 완성차업체들 역시 전기차 확대 전략을 조정하고 재고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배터리 업체들도 공격적인 공급보다는 재고 관리와 생산 효율화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미국에서는 관세 리스크가 불확실성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2026년부터 EV용 리튬이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최대 58.4%의 고율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업체들은 미국 수출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제품 전략 변화로도 이어진다. 특히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중저가 EV 판매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 역시 중저가 제품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하반기부터 폭스바겐과 르노 차량에 고전압 미드니켈(NCM)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각각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SDI와 SK온도 LFP 배터리 양산을 준비하며 망간 비율을 높인 배터리 등 중저가 시장 대응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투자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배터리 업계는 수요 불확실성에 대응해 신규 투자를 줄이고, 기존 설비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설비투자를 전년 대비 3조원 줄이고 기존 생산라인의 효율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삼성SDI와 SK온 역시 투자 계획을 재점검하며 보수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권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1분기 실적 흐름을 보면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실적 저점 구간을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미국의 고율 관세 유지 여부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정책의 향방이 향후 업황과 주가의 방향성을 좌우할 주요 변수”라고 분석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