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EU 위원, 체코에 한수원 원전계약 중단 요구

입력 2025-05-13 09:22
체코 두코바니 원전 모습. 높이 125m의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DB

프랑스 출신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가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 사업과 관련해 계약 절차를 중단하라고 체코 정부에 요구했다.

12일(현지시간) 유럽 매체 유락티브에 따르면 루카시 블체크 체코 산업통상장관은 체코 공영방송 CT 인터뷰에서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에게 관련 서한을 받았고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체크 장관은 서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프랑스전력공사(EDF) 시각과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EDF는 한수원과 입찰경쟁에서 밀린 후 체코 법원에 소송을 제기, 지난 6일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최종 계약을 금지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다. 이 때문에 당초 7일로 예정됐던 한수원과 체코 발주사 간 최종계약 서명식이 무산됐다.

EDF는 한수원이 EU의 역외보조금규정(FSR)을 위반했다며 EU 집행위원회에 이의도 제기한 상태다. 한수원은 FSR을 어겼다는 EDF 주장과 관련해 정부로부터 어떤 보조금도 받지 않았고 체코 원전 입찰은 2022년 3월 개시돼 FSR 적용대상도 아니라고 반박한 바 있다.

세주르네 부위원장은 서한에서 역외 재정지원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 중이라며 최종계약에 서명할 경우 “(보조금 지급 여부를) 효율적으로 조사할 권한과 당사자들에게 시정 조치를 하도록 할 능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서한은 EDF가 법원에 소송을 낸 지난 2일 발송됐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체코 당국은 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낸 세주르네 부위원장이 자국 원전업체를 지원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블체크 장관은 그가 프랑스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얀 리파프스키 체코 외무장관도 CNN 프리마 뉴스 인터뷰에서 세주르네 부위원장이 EDF의 제소 당일 서한을 보낸 점을 들며 “프랑스인 위원이 금요일 밤 10시에 일하고 있었다는 점이 몹시 이상하다. 그는 틀림없이 매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베네시 체코전력공사(CEZ) 사장은 이날 체코 CTK통신에 “프랑스 측이 원전 건설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정부가 EU 요구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EU는 이 같은 의혹에 선을 그었다. 토마스 레니에 EU 대변인은 “단일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집행하고 체코 당국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두코바니 원전 단지에 1200㎿(메가와트)급 원전 2기(5·6호)를 새로 짓는 이 사업은 총 사업비만 약 4000억 코루나(약 26조원)에 달한다. 계약이 성사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후 16년 만의 ‘2호 원전 수출’ 성과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