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쵸비’ 정지훈은 ‘국가권력급’ 미드라이너다.
그는 10일 BNK전에서도 아리와 갈리오로 각각 2킬 3데스 8어시스트, 3킬 6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시즌 8번째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POM)로 선정됐다. 12경기를 치렀고, 12번을 이겼으며, 그중 8번을 가장 밝게 빛난 셈이다.
무엇이 그를 강하게 만드는가? 정지훈의 강함은 반드시 타고난 재능, 순간적인 재치와 판단력, 남보다 빠른 손가락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패치 노트의 숫자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 이를 토대로 남들과는 다른 역발상을 해내는 능력도 그를 ‘국가권력급’ 미드라이너로 만드는 요인들이다. 그는 적토마에 올라탄 듯 싸우지만, 동시에 사륜거에 탄 채로 넓고 멀리 살펴볼 줄도 안다.
그런 것 중 하나가 패치로 인한 메타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반응하는 능력. 정지훈은 이 영역에서 늘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날 역시 그런 흔적이 군데군데서 나타났다. 우선 1세트 룬 선택. 그는 이전에 아리를 플레이할 때 선택하곤 했던 굳건한 의지의 완전한 비스킷을 버리고 삼중 물약을 골랐다.
5초에 걸쳐 잃은 체력의 12%를 회복시켰던 비스킷은 이제 챔피언의 최대 체력에 비례해 회복시키게끔 변경됐다. 정지훈은 “쿠키의 변경 수치를 읽어봤다. 최대 체력 비례 옵션은 탱커들에게 좋을지는 몰라도 메이지들에겐 아니다”라며 “여전히 비스킷이 있으면 라인전이 편해지는 건 맞지만, 그 어드밴티지가 룬 한 칸을 차지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세트 초반 상대의 갱킹으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명장면도 그의 룬 연구에서 비롯됐다. 과잉성장이 아닌 불굴의 의지를 선택한 게 그가 20 미만의 체력으로 간신히 살아남는 힘이 됐다. 군중 제어기를 맞았을 때 추가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부여하는 불굴의 의지는, 이번 패치에서 레벨과 관계없이 수치가 10으로 고정됐다.
정지훈은 “설령 내가 죽더라도 제드에게 킬이 들어가면 그 킬이 더 가치 있다고 봤다. 살아남은 것은 운의 영역”이라면서도 “하지만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초반에 효과가 없다시피 한 과잉성장을 선택했다면 죽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늘 사일러스의 사슬 후려치기(Q)와 도주/억압(E)를 맞았을 때 불굴의 의지 효과가 발휘되므로 효율이 높아 이처럼 룬에 변화를 줬다고 밝혔다.
정지훈은 이날 1세트에서 영겁의 지팡이가 아닌 악의를 1코어로 선택하는 ‘악의 아리’를 선택했다. 그는 “한타 구도에서 아리가 먼저 싸움을 열어야 하는데 먼저 잡힐 위험이 있으면 영겁 아리가 좋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악의 아리가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1세트는 상대의 순간적인 CC 연계가 위협적인 조합이 아니어서 악의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초반 ‘빅라’ 이대광(아지르)과의 라인전 딜 교환에서 대승을 거뒀다. 정지훈은 “이 구도에선 아리가 1레벨에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며 “상대와의 심리전에서 많은 이득을 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아리 대 아지르 구도는 그가 정통한 구도 중 하나. 정지훈은 “아지르가 낮은 레벨 단계에서 아리를 때리려고 하지만 크게 아프지 않다. 아리 플레이어가 위축되지 않고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나가서 현혹의 구슬(Q)을 쓰면 상대를 맞힐 확률이 높아진다”고 귀띔했다.
젠지가 강한 건 국가권력급 미드라이너 덕분만은 아니다. 나머지 팀원들도 수준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어서 이들은 한정된 피드백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있고, 남들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정지훈은 “12연승보다 우리 팀이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전부 잘한다. 개개인의 피드백에 시간을 쏟지 않고 팀적인 움직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서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우리는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다.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결국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