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사냥 재개

입력 2025-05-08 23:07 수정 2025-05-09 02:12
LCK 제공

젠지 ‘캐니언’ 김건부가 8일 농심 레드포스전에서 보여준 초반 동선과 설계는 대단했다.

경기 후 인터뷰를 토대로 그의 초반 움직임을 복기해보자. 김건부는 1세트에서 신 짜오로 자신의 위쪽 정글인 칼날부리와 레드 버프, 돌거북을 순서대로 처치했다. 이후 아래쪽 정글로 내려가지 않고 상대 위쪽 정글로 진입했다. 왜 그랬을까. ‘기인’ 김기인이 받는 압박감을 줄이기 위한 판단이었다. 제이스 대 럼블은 예민한 구도, 정글러가 가까운 쪽이 자신 있게 플레이하면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구도다.

김건부는 “상대 뽀삐가 칼날부리 스타트인 걸 체크했고, 탑이 제이스 대 럼블 구도여서 정글러가 있는 쪽이 많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상대 블루 버프에서 뽀삐를 밀어내면 이득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카운터 정글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건부가 칼날부리 스타트라는 정보를 가지고서 예측한 ‘기드온’ 김민성의 동선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바텀 3레벨 갱킹. 두 번째는 아래쪽 정글을 비운 뒤 위쪽 정글로 올라와 가까운 캠프부터 처치하는 정버프 동선. 이날 상대의 선택은 후자였다. 김건부는 “뽀삐가 바텀 3레벨 갱 타이밍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어스름 늑대를 사냥 중인 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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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정글러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예측해낸 그는 바로 블루 버프를 때리지 않고 부시에 와드만 설치했다. 독 두꺼비를 빼앗고, 김민성의 뒤를 쫓으면서 그를 밀어냈다. 김민성이 블루 버프를 욕심내자 ‘쵸비’ 정지훈(아리)을 불러 그를 잡아내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정글러 간 성장 차이를 벌렸다.

김건부는 “뽀삐는 초반에 강한 챔피언이다. 그걸 이용해 스노우볼을 굴려야 하는 챔피언인데 초반부터 말리면 정말 막막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지훈이가 끝까지 뽀삐를 추격해서 킬을 만들어냈을 때, 이어서 뽀삐가 바텀 갱킹을 노리기 위해 시간을 소모했을 때(5분15초경) 우리가 유리해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건부의 ‘크랙 동선’은 2세트에서도 나왔다. 그는 점멸로 드래곤 둥지를 넘어가 상대 레드 버프와 칼날부리를 뺏어 먹고, 미드 갱킹을 성공시켰다. ‘칼릭스’ 선현빈이 빅토르로 ‘쵸비’ 정지훈이 골랐던 갈리오를 압박할 수 없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불과 2분17초 만에 농심의 게임 플랜이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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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은 왜 이른 사냥을 재개했을까?

압도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찍어누르는 플레이를 잘하고, 선호하는 김건부다. 그가 이처럼 과감한 초반 동선을 설계하고 실행으로 옮긴 건 지난 8일 리그에 적용된 25.09패치와도 연관이 있다. 정확하게는 유충 등장 시간의 변경 때문이다. 기존 패치에선 첫 유충의 중요도가 워낙 높아 정글러들도 6분 유충 사냥에 최적화된 동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이제는 유충이 8분에 나온다. 2분의 여유가 더 생겼다. 김건부는 “약속 시간이 늦어진 셈이다. 약속 시간이 타이트하지 않으니까 다양한 동선과 빠른 템포의 갱킹을 시도해도 리스크가 전보다 덜하다. 앞으로 다른 경기에서도 이런 동선과 갱킹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패치에선 그런 동선을 시도하면 상대 정글러가 나보다 빠르게 6레벨을 찍어버렸다. 유충 1개를 먹고 6레벨을 만들면서 유충 한타에서 6레벨 대 5레벨 싸움을 만드는 구도가 나와 리스크가 컸다”면서 “이제 유충 싸움이 8분에 열려서 그런 걱정이 없다. 정글러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가 2세트에서 판테온으로 정글링 시작과 동시에 과감하게 점멸을 썼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건부는 “(유충 싸움이 뒤로 밀리면서) 빠르게 점멸을 썼을 때의 리스크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시도해봤다. 리스크에 비해 리턴이 높은 플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의 레드 버프와 칼날부리를 털었을 때 이미 이득을 봤다고 생각했다. 이후부턴 순발력과 즉흥적인 판단의 영역. 그는 라인 한 곳을 찌를 계획을 세웠다. 우선 바텀이 푸시를 당하는 구도가 나오면 바텀 갱킹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바텀 듀오로부터 “우리가 푸시하고 있다”고 콜이 나오자 곧바로 미드를 봤다. 이처럼 라이엇 게임즈가 미룬 2분은 정글러들의 창의력 싸움이란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북극곰은, 이 2분의 사냥 시간을 몹시 좋아하고 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