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파티는 끝났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GC코리아에서 열렸던 LIV골프 코리아다. 국내에서 처음 치러진 LIV골프에 굳이 ‘광란의 파티’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LIV골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자금으로 2022년에 출범한 골프 리그다. 여타 투어와 달리 자체 퀄리파잉이 없다. 대신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DP월드투어를 비롯한 전 세계 골프투어에서 활동중인 선수를 영입해 운영하고 있다. 영입 선수의 지명도에 따라 천문학적 이적료가 지불된다.
구체적 계약 조건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브라이슨 디섐보 1억2500만 달러(1739억 6250만 원), 필 미켈슨(이상 미국) 2억 달러(2783억 4000만 원), 욘 람(스페인) 6억 달러(8350억 2000만 원) 등 웬만큼 비중이 있는 선수는 1억 달러 이상의 이적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7억~8억 달러의 천문학적 이적료로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돈보다는 전통과 가치, 그리고 명예를 중시했다는 분석이다.
LIV골프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눠 시상한다. 13개 단체팀 성적은 팀원들의 스코어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대회는 매년 14개 일정으로 치러진다. 올해 한국에서 처음 열린 LIV골프 코리아는 그 중간인 시즌 7번째 대회였다. 대회당 총상금액은 2500만 달러(약 347억 8750만 원)로 PGA투어 평균 상금보다 많다.
대회 방식도 독특하다.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라는 골프 대회의 일반 룰을 깨고 54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우승자를 가린다. ‘LIV’가 로마어로 ‘54’를 의미한다는 것으로 그 이유는 설명된다. 54명이 출전하는 경기는 빠른 진행을 위해 샷건 방식(각각 다른 홀에서 동시에 티오프 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LIV골프의 캐치 프레이즈는 ‘문화 콘텐츠형 골프 페스티벌’이다. 팬 중심의 운영을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선수 구성에서 상금, 대회장 분위기 등 두루두루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파격’ 그 자체다. 그것을 위해 상상을 초월한 비용이 지출되는 건 당연하다.
LIV골프 코리아만 봐도 그렇다. 입장료가 1일권 30만 원, 전일권은 80~90만원, 프리미엄·VIP권 100만원~800만원대였다. 국내에서 열린 골프 이벤트 입장료 중 역대 최고액이다. 국내 골퍼들로서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금액이다. 그런 이유로 관람객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디섐보의 우승 상금도 국내 골프 팬들 사이에서 한동안 회자될 듯하다. 그는 개인전(400만 달러)과 단체전 우승(75만 달러)으로 475만 달러(약 66억 6000만 원)를 손에 쥐었다. 그 또한 지금껏 국내서 열린 골프 대회에서 목격되지 않은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대회장 분위기는 주최측 의도대로 ‘골프 해방구’ 그 자체였다. 선수들의 경기 관전은 뒷전이고 음주와 가무를 곁들인 파티와 공연을 즐기려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물론 이른바 문화충격으로 대회장을 서둘러 빠져 나온 팬들도 적잖았다.
이렇듯 LIV골프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뉜다. 골프 대회장이 시끌벅적한 축제의 장이 되길 바라는 팬들은 당연히 반색하며 즐기지만 오소독스한 골프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은 게 당연하다.
호의적이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또 있다. PIF의 실질적 주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의 PGA투어 선수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LIV 골프행을 거절했다.
그래서 선수 구성도 당초 기대에는 못미쳤다. 엄청난 공을 들였던 우즈와 매킬로이를 영입하지 못한 게 가장 큰 타격이다. 람과 디섐보가 우즈와 매킬로이의 역할을 대신한다지만 파급력은 덜하다.
일부 젊은 피가 수혈됐지만 대다수가 PGA투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라는 것, 개중에는 도박과 약물 중독으로 구설수에 오른 선수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도 비우호적 요인이다.
그런 LIV골프가 국내 골프팬들 사이에서 관심이 커진 건 이른바 장유빈(22) 효과 때문이다. 작년에 KPGA투어를 평정했던 장유빈은 당초 예정했던 PGA 콘페리투어 파이널 개막을 1주일 앞두고 LIV행을 전격 선언했다. 그의 PGA투어 진출을 바라는 팬들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 장유빈이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관심도도 반감되는 분위기다. 이번 LIV골프 코리아에서도 장유빈은 공동 48위에 그쳤다. 시즌 일정을 절반 소화한 시점서 포인트 순위는 현재 52위로 강등권이다.
LIV 골프는 승강제를 두고 있다. 승강제는 자동 재계약 대상인 Lock Zone(1~24위), 잔류 가능성이 있는 Open Zone (25~48위), 그리고 자동 강등되는 Drop Zone(49위 이하) 등 3구역을 분류한다. 장유빈은 3년 계약의 영입 케이스여서 포인트 48위 이내에 들면 잔류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승격 대회(LIV Golf Promotions)를 통해 리그 출전권을 획득해야 한다.
만약 이저저도 안되면 KPGA투어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런 뒤 미뤘던 PGA투어를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 LIV골프가 종료된 시점으로 부터 1년간은 PGA투어 공인대회에 출전할 수가 없다.
많은 골프 관계자들이 장유빈의 LIV골프행을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은 바로 이런 결과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아직 젊은데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문제마저 해결돼 또래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 그에게서 ‘도전’이 보이지 않는 건 아쉽다.
반면 김민규(24·종근당)와 이승택(29·경희)의 끊임없는 도전으로 빅리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둘은 KPGA가 PGA투어, DP월드투어와 체결한 업무 협약의 혜택을 활용해 각각 DP월드투어와 콘페리투어서 활약하고 있다.
그 중 현재 콘페리투어 포인트 랭킹 10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승택은 내년 PGA투어 진출이 유력시된다. PGA투어는 콘페리투어 포인트 상위 20명에게 다음 시즌 PGA투어 카드를 준다.
PGA투어는 KPGA투어와 협약에 의해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1위에게 PGA투어 큐스쿨 최종전 직행 자격 ,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상위 2~5위에게는 PGA투어 큐스쿨 2차전 직행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DP월드투어는 대상 포인트 상위 1명에게 17번 시드, 대상 포인트 1위 이후 상위 2명에게는 18번 시드를 부여하고 있다.
PGA투어와 LIV골프는 통합을 위해 부단한 협상을 하고 있다. 우즈와 매킬로이도 힘을 보태고 있지만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골프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소위 ‘트럼프식 협상술’을 동원해 가세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보다 어렵다”고 사실상 백기를 든 상태다.
지난 4월말에 열렸던 KPGA투어 우리금융 챔피언십에 출전했던 임성재(26·CJ)는 LIV골프는 돈은 있지만 ‘명예’가 없어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챔피언스투어서 활동중인 최경주(54·SK텔레콤)는 PGA투어서 활동중인 대다수 선수들이 임성재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만큼 통합이 어렵다는 얘기다.
LIV 골프는 2025시즌부터 ‘LONG LIV GOLF(LIV 골프여 영원하라)’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들의 바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LIV골프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천문학적 오일머니를 앞세운 광란의 파티 문화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LIV골프가 세계 유일의 골프 독립 리그가 아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