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명 학술지에 게재된 여성질환 관련 논문에 남성 산모와 남성 자궁경부암 환자 사례가 다수 등장해 연구윤리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제의 논문을 게재한 한 학술지는 공식 사과 성명을 내고 심사 담당자를 해고했다고 밝혔다.
중국 펑파이신문과 계면신문 등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산둥성 지루병원 산부인과 간호사 A씨가 2017년 중국의료과기출판사가 발행하는 ‘실용부인과내분비’에 게재한 논문 ‘자궁근종 수술 전후의 감정과 삶의 질에 대한 맞춤형 간호 개입 효과’에 남성 환자 사례가 다수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논문은 연구 대상으로 자궁근종 환자 80명을 선정했는데 대조군 환자 40명 중에 남성 27명, 관찰군 환자 40명 중에 남성 28명이 포함됐다.
누리꾼들은 “남자도 자궁근종에 걸리냐”고 비꼬며 유사한 논문들을 찾아 나섰는데 국가급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 추가로 발견됐다.
중국보건협회가 발간하는 국가급 종합의학학술지 ‘중국의약지남’에 2015년 게재된 ‘자궁경부암 복강경 근치술’ 관련 논문에는 연구대상인 자궁경부암 환자 200명에 남성 115명이 포함됐다. 같은 학술지에 2018년 실린 ‘자궁선근종 복강경 보존 수술’ 관련 논문에는 자궁선근종 환자 60명 중 남성이 38명이었다. 같은 해 게재된 ‘양수색전증 고위험 산모’ 관련 논문에도 실험군에 34명, 대조군에 33명 등 총 67명의 남성이 고위험 산모로 분류됐다.
학술지 ‘실용부인과내분비’에서도 엉터리 논문이 추가 발견됐다. 2015년 게재된 ‘부인과 이상자궁출혈의 진단 및 치료’ 논문은 부인과 자궁출혈 환자 88명을 연구 대상으로 했는데 그중 40명이 남성이었다. 학술지 ‘대가건강’에 2015년 게재된 ‘초음파 자궁근종 치료’ 관련 논문에는 자궁근종 환자 78명 중 남성이 45명이었다. 2014년 ‘중국농촌위생’에 실린 ‘난치성 산후출혈’ 관련 논문은 69명의 산모 환자를 연구했는데 남성 산모 35명이 포함됐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근종 연구의 대조·관찰 그룹 사례에 남성 환자가 포함될 수는 없다”면서 “학문적 부정으로 신고할 수 있다”고 펑파이신문에 말했다. 문제의 논문 작성자는 모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었다.
홍콩 성도일보는 “문제의 논문들은 승진이나 자격평가를 위해 제출된 ‘물논문’(형식적인 논문)으로 다른 실험 데이터를 복사하고 짜깁기해 조작한 것”이라며 “작성자 본인도 논문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고 학술지 편집·심사 과정도 형식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여론이 들끓자 관련 기관들은 곧바로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중국의약가이드’는 6일 “이번 학문적 부정행위는 심사 절차의 허점과 심사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며 “일부 편집자와 심사자들이 학술 규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준에 미달하는 검토를 했다. 이번 사건은 본지의 명성과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줬으며 학술 환경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면서 공개 사과했다. 문제의 논문을 심사한 편집자들은 해고했다고 밝혔다.
산둥 지루병원은 지난 5일 간호사 A씨에 대해 규정 및 규율 위반에 대해 경고하고 강등 조치를 내렸다. 5년간 이뤄진 모든 승진과 부여된 승진자격도 취소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