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6일 오후 10시 20분,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본당. 청년들이 입장할 때 받은 성찬 키트를 꺼내 들었다. 조용한 침묵 가운데 떡과 잔을 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되새겼다. 믿음의 고백은 이내 결단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연약하지만, 날 위해 살이 찢기고 피 흘리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이제 삶의 자리로 돌아가 작은 예수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현장에서 드려진 성찬식은 곧 세상을 향한 파송의 예배였다. 초대교회처럼 복음을 ‘이벤트’가 아닌 ‘사건’으로 살아낸 이들은 사도행전 2장 47절을 함께 읽으며 변화된 삶을 다짐했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찬양예배팀 ‘아이자야씩스티원’의 찬양이 흐르자 1만여 청년의 손이 하늘을 향해 들렸고 눈물 섞인 기도가 본당을 채웠다. 회개의 고백이 있었고 복음을 다시 붙드는 결단이 있었다.
이날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청년들의 긴 줄이 성전 입구를 지나 서초역 4번 출구 근처까지 이어졌다. 크리스천 플랫폼 로아스토어(대표 박종우), 예배사역팀 카우치워십, 국제구호단체 사마리안퍼스코리아가 공동 기획하고, 사랑의교회 청년부서들(대학부, 대청부, 청년부)이 협력한 ‘레디컬(READY CALL)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올해 2회째 행사인 레디컬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욜 2:12~13)는 주제 말씀 아래 ‘진정한 회개를 통한 진정한 변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성찬식에 앞서 진행된 저녁 집회의 핵심 키워드는 ‘카타콤(Catacomb)’이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 복음의 본질을 붙들자는 취지 아래, 집회는 회개와 헌신, 성찬과 파송의 순서로 이어졌다. 박찬열(노크처치), 김선교(키퍼스처치), 김상인(움직이는교회) 목사는 각각 ‘죄’, ‘회개’, ‘삶의 변화’를 주제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며 “복음만이 청년을 살린다”고 입을 모았다.
회개의 여정, ‘내 마음의 집’ 방탈출
이날 저녁집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레디컬 페스티벌 현장 곳곳에서는 지난해보다 더욱 풍성해진 프로그램들이 축제의 메시지를 미리 전하고 있었다. ‘회개’라는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체험들은 말씀 앞에 서기 전 청년들의 마음을 준비시켰다.
이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은 프로그램은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을 콘셉트로 한 방탈출형 체험 전시였다. 지난해에는 없던 새로운 시도로 행사 전 사전 앱 체험에만 4만여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리펜트 하우스(RE:PENT HOUSE)’라는 이름의 가상 호텔에 체크인한 청년들은 ‘자아’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발렛파킹한 뒤 무지개빛 열쇠 8개를 손에 쥐고 ‘마음의 집’ 여러 방을 차례로 통과한다. 로버트 멍어의 고전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에서 영감을 받은 이 전시는 3층 서재부터 11층 거실, 마지막 14층 ‘명의 이전실’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누가 내 삶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재에서는 자신을 채우고 있던 사고방식을 돌아보고 벽장에서는 숨겨둔 죄의 습성을 직면하며 침실에서는 성적인 순결을 지키는 시간을 갖는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14층.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유리 벽 앞 빨간 식탁에 둘러앉아 성찬 모형을 마주한 채 예수 그리스도께 삶의 명의를 이전하는 ‘결단의 사인’을 남긴다. 이후 10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에는 마태복음 4장 4절, 디모데후서 2장 2절 등 청년들을 위한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어 청년들은 걸음을 옮기며 묵상의 시간을 이어갔다.
충남 홍성에서 온 크리스천 커플 주장원(26)씨와 유다정(19)씨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체험으로 방탈출 전시를 꼽았다. 유씨는 “데이트로 처음 레디컬에 왔다”며 “침실에서 순결을 상징하는 이름표를 지키는 게임 등 상징적인 체험활동들을 통해 사소한 죄악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주씨는 “30분 남짓이었지만 너무 깊지도 가볍지도 않은 절묘한 균형을 지킨 활동 덕분에 오늘 묵상하고 깨달은 부분들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고 전했다.
복음과 일상, 공공성을 잇는 연합의 장
사랑의교회 1층 로비에서는 60여 개의 크리스천 브랜드가 참여한 팝업스토어 ‘텐트메이커스’가 열렸다. ‘낫마인’은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사바스’는 욕실 묵상 도구를 통해 ‘일상의 안식’을 디자인했다. B급 유머로 복음을 전하는 ‘갓츄’, 향기로 예수님을 전하는 ‘콘베이G’ 등 MA 세대의 감성을 겨냥한 굿즈들이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같은 층 외부 광장 ‘미션플라자’에는 NGO 단체와 푸드트럭이 들어섰다. 월드비전, 희망친구 기아대책, 사마리안퍼스 등 20여 개 NGO 부스는 필리핀·과테말라·미얀마·북한 등 선교지의 실제 사역을 생생하게 전했다. 세계문화체험부터 미션 플래너 체험까지 총 16개 부스가 운영됐고, 이날 하루만 약 400명씩이 들러 활기를 더했다.
특히 월드비전의 ‘6km 포 워터(6km for Water)’ 부스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물 긷는 여정을 간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물방울을 채우기 위해 15초 안에 달려야 하는 미션에 도전하며 “이 짧은 시간도 힘든데 매일 6km를 걷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매일 신선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하게 됐다” 등의 소감을 쪽지에 남겼다.
부스 기획을 맡았던 오기선(40) 사마리안퍼스코리아 대표는 “올해 레디컬의 핵심은 ‘회개’”라며 “청년들이 일상의 관심사와 복음을 연결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기독교의 공공성과 연합의 정신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는 시간
한 층 위로 올라가면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활동 중인 10인의 크리스천 리더가 릴레이로 강연하는 ‘아고라 리더십 세미나’가 열렸다. 기업, 디자인, 미디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비전을 제공했다.
3층 사무엘홀에는 켜심심리상담센터, 한동대 상담대학원, 사랑의교회 인터치상담교회가 함께 운영하는 크리스천 상담 부스가 마련됐다. 감정언어카드, 자가 심리테스트 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제공됐고 30개 독립 부스에서는 무료 상담이 진행됐다. 지난해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상담 부스는 올해도 긴 줄이 생기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관계유형탐색’을 주제로 심리검사와 상담을 받은 정재섭(33)씨는 “MBTI처럼 분석된 유형 결과 나는 ‘관리자형’이었는데, 내 삶을 자꾸 조정하고 통제하려는 습관이 있더라”며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고 연합하는 태도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는 특히 한국 선교 140주년을 기념해 ‘선교기념관’도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한국 청년대학생 중심의 선교 연합운동 ‘선교한국’(대표 이대행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조선 구한말 선교사들을 통해 ‘받은 복음’을 이제는 다시 전하자는 ‘전할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선교한국은 회원 단체인 WMC 스태프들과 함께 현장에서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와 비전을 설명하며 청년들의 선교적 삶을 격려했다.
마지막에는 룰렛을 돌려 선교지의 기도 제목 카드를 뽑고,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헌신을 결단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교회 청년부와 함께 온 김도훈(23)씨는 “선교한국의 1988 결의문 중 ‘내 안위 외엔 아무 가치도 없는 교회의 삶에 신물이 났다’는 문장이 곧 내 고백 같았다”며 “선교적 삶을 외면했던 지난날이 생각나 부끄럽고 회개가 됐다”고 고백했다.
복음은 여전히 청년을 살린다
이처럼 레디컬 페스티벌의 여정은 단순한 행사 참여를 넘어 청년들이 삶의 방향을 다시 복음으로 정립하는 결단의 시간이 됐다.
레디컬 페스티벌을 총괄한 박종우 로아스토어 대표는 “회개는 끝이 아닌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복음 위에 다시 굳건히 서는 시작”이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결단한 청년들이 예배가 일상이 되어 세상 속으로 파송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