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첫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논의가 국민의힘 내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논의에 미온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지도부를 비롯한 당내 ‘단일화파’ 세력이 김 후보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서면서다.
특히 당무우선권을 쥔 김 후보가 경선승리 직후 단행한 당 사무총장 내정안도 당사자인 장동혁 의원이 막판에 고사하며 없던 일이 됐다. 대신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이양수 사무총장이 유임되면서 단일화 논의가 김 후보와 지도부간 힘겨루기로 비화될 조짐마저 감지된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통화에서 “장 의원이 단일화가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사무총장을 맡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표시했다”며 “이양수 사무총장을 그대로 유임하고, 장 의원은 다른 부분에서 역할을 하기로 정리를 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 후보는 지난 3일 전당대회 직후 당대표·원내대표와 함께 당 3역으로 꼽히는 사무총장에 장동혁 의원을 임명하는 인선안을 발표했다. 단일화에 적극적이었던 이양수 사무총장 교체를 두고 당안팎에서는 단일화에 대한 김 후보의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실제 이날 서울 종로구 조계사 행사에서 한 후보가 김 후보에게 “오늘 중으로 만나자”고 회동을 제안했지만, 김 후보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 의원이 사무총장직을 고사한 것도 이런 시각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장 의원은 “사무총장직을 고사하기로 결정했다”며 “저는 김 후보의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온 사람으로서 앞으로 있을 단일화를 이뤄내는 일에 저의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당 지도부와 단일화파 의원들은 김 후보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4선 중진의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후보등록 마감일인 오는 11일 전에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면 이번 대선은 필패”라고 입장을 냈다.
개별 의원들의 단일화 촉구 메시지도 줄을 이었다. 김 후보 캠프 정책본부장인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빨리 단일화하고 이재명 잡으러 가야 된다”고 글을 올렸고, 주진우 의원은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다. 다른 일정 다 필요 없다. 당장 (김 후보와 한 후보가) 만나야 한다”고 적었다. 최형두 의원은 “김 후보가 단일화의 중심으로 과감하게 돌진해야 한다”며 “후보 의중과 무관하게 주변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비치면 경선 컨벤션 효과도 반감된다”고 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지금 지도부에 후보가 빨리 단일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며 “한 후보와의 단일화는 우리 후보도 경선에서 약속했던 부분이고, 우리 당원과 당을 지지하는 국민 거의 대부분이 요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양수 사무총장은 페이스북에 김 후보가 경선 TV토론회에서 ‘한 대행과의 단일화는 전당대회 직후여야 한다?’는 질문에 ‘O’ 팻말을 들었던 장면을 캡쳐해 올리기도 했다. 지도부는 이날 저녁 의원총회를 소집해 단일화와 관련한 의원들의 입장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당이 경선을 거쳐 선출된 대선후보를 직접적으로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데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우재준 의원은 “당의 후보를 뽑았으면 당력을 모아 지원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뽑자마자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 압박만 하는 것은 선출된 후보에 대한 도리도 아닐 뿐더러 함께 경쟁한 후보들에 대한 도리도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 측근인 차명진 전 의원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김문수가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된지 48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선대위가 구성되지 않고 있다. 당내 쿠데타다”고 비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