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전화 다 받는 트럼프…언론 때리기 뒤에 숨은 ‘사랑과 집착’

입력 2025-05-03 1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걸어나오며 취재진을 향해 주먹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마이클,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아. 당신은 나에 대해 절대로 좋은 기사를 쓰지 않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말(현지시간) 시사지 ‘애틀랜틱’의 마이클 셰러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셰러 기자는 트럼프의 휴대폰 번호를 가지고 있었고, 별 기대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트럼프가 불쑥 받은 것이었다. 트럼프는 전화를 받자마자 셰러 기자를 비난했지만,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인터뷰는 이어갔다.

셰러 기자는 추가 질문을 위해 지난달 12일 트럼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하지만 9일 뒤 트럼프는 셰러 기자를 백악관 집무실로 직접 초대해 추가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트럼프가 ‘추잡한 인간’이라고 불렀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까지 초대됐다. 트럼프가 ‘망해가는 잡지’라고 불렀던 애틀랜틱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됐다고 AP통신은 후일담을 전했다.

트럼프는 인터뷰 이유에 대해 트루스소셜에 “호기심과 나 자신과의 경쟁, 그리고 애틀랜틱이 진실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인터뷰를 한다”고 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을 맹비난하면서도 언론의 관심은 마다하지 않는 트럼프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다.

애틀랜틱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위급 외교 안보 참모들이 민간 메신저 ‘시그널’을 통해 군사기밀을 주고받았다는 이른바 ‘시그널게이트’를 폭로한 매체다. 트럼프 행정부에 가장 타격이 컸던 기사로 메신저창을 만들었던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결국 지난 1일 경질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보도가 나왔을 당시엔 골드버그 편집장에 대해 “기만적이고 극도로 신뢰를 잃은 자칭 기자”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골드버그에게 따뜻하게 악수를 건네기도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적대적 매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당 매체의 전화를 직접 받고, 추가 인터뷰까지 한 것이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인터뷰를 적과도 대화하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적대국이든 제프리 골드버그 같은 좌파 활동가이든 ‘직접 외교’를 신뢰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트럼프처럼 언론과 자주, 많이 대화하는 대통령은 찾기 어렵다. 취임 100일을 맞아서도 ABC 방송, 시사지 타임, 애틀랜틱 등 여러 성향의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트럼프는 공개 행사마다 기자들의 질문을 가리지 않고 받으며 자기 생각을 쏟아낸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위급 취재원을 매일 만나고 질문할 수 있으니 ‘뉴스거리’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인터뷰를 한 마이클 셰러 기자는 AP통신에 “그에겐 모든 게 거래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 이것이 나에게 이익이 될까? 손해가 될까?’ 이런 계산이 그의 사고방식의 핵심”이라며 “이것이 트럼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창”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언론을 사랑하지만 ‘손해가 되는’ 언론사에는 적대적인 태도도 유지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거나 동조하지 않을 경우 ‘가짜뉴스’ 낙인을 찍고 배척한다. 트럼프 2기에서는 AP통신이 표적이 됐다. 백악관은 AP통신이 트럼프가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이라고 바꾼 뒤에도 ‘멕시코만’을 고집하자 백악관 풀단(근접 공동) 취재에서 배제했다. 현재 이 사안은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연방통신위원회는 트럼프에 비판적인 CBS, ABC 방송 등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취임 100일 전후로 언론이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자 언론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트럼프는 “가짜 여론조사”라며 “그들은 내가 아무리 잘 지내고 있어도 나에 대해 부정적 기사만 쓰는 국민의 적”이라고 했다. 트럼프와 언론의 ‘애증’ 관계는 2기 임기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