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에게 ‘무용계 아카데미상’ 안겼던 그 작품이 온다

입력 2025-04-30 06:00
강수진(왼쪽 사진의 오른쪽) 국립발레단 단장과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29일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 열린 ‘카멜리아 레이디’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수진 단장이 이번 작품의 트레이너로 온 마린 라드메이커와 함께 단원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국립발레단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에게 1999년 ‘무용계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안긴 작품이다.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한 이 작품은 코르티잔(고급 창부) 마그리트와 귀족 청년 아르망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무대화했다. 국립발레단은 오는 5월 7~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조연재-변성완, 한나래-곽동현을 주역으로 이 작품을 선보인다.

강수진 단장은 29일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이마이어 선생님의 ‘카멜리아 레이디’는 제게 특별한 작품”이라면서 “이 작품은 인간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내면의 깊은 감정을 발레의 언어로 풀어낸 걸작이다. 이번에 우리 발레단과 선생님 등 스태프가 진심을 담아 준비한 만큼 관객에게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춤추는 발레는 말보다 마음에 깊게 와닿는다”고 부연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지난 2012년 타이틀롤을 맡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 내한공연 장면. 이때 파트너로 출연한 마린 라드메이커는 이번 국립발레단 공연에 트레이너로 왔다. (c)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크레디아

197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초연한 ‘카멜리아 레이디’는 당시 열광적 반응을 일으키며 금세 드라마 발레의 고전이 됐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노이마이가 이끌었던 독일 함부르크 발레단에서만 공연되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해외 발레단에 라이선스를 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2년과 2012년 강 단장이 출연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내한공연으로 선보인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아시아에서 국립발레단이 유일하게 라이선스를 받았다.

노이마이어는 “‘카멜리아 레이디’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위촉으로 만든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이미 연극이나 오페라, 영화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나는 원작의 핵심에 충실하려 했다”면서 “발레는 원작처럼 등장인물의 시각들이 반영되면서도 스토리가 영화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 (c)국립발레단

노이마이어는 전통적인 발레 움직임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를 깊게 드러내는 안무가로 정평이 나 있다. 무려 51년간 함부르크 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그는 국립발레단과 지난해 ‘인어공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한국 발레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 올해 8월 13~17일 다시 무대에 오른다. 노이마이어는 “지난해 ‘인어공주’를 함께한 덕분에 이번에 ‘카멜리아 레이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무용수들을 캐스팅했다. 그래서 단순히 작품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립발레단만의 작품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아직 살아 숨 쉬는 안무가다. 내게 작업은 무용수들과 매 순간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강수진 단장은 이번에 노이마이어의 권유로 트레이너들과 함께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지도했다. 특히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시절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자주 호흡을 맞췄던 마린 라드메이커와 함께 직접 시범을 보이는 등 열의를 불태웠다. 강 단장은 “이번에 ‘카멜리아 레이디’를 준비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우리 단원들에게 남김없이 전하고 싶었다”면서 “연습실에서 라드메이커와 함께 시범을 보이며 설명하는데, 예전 감정이 다시 몸과 마음에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무대에서 춤췄던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고 피력했다.

국립발레단은 오는 5월 7~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조연재-변성완, 한나래-곽동현을 주역으로 ‘카멜리아 레이디’를 선보인다. 주역들의 연습 장면. (c)국립발레단

드라마 발레는 20세기에 등장한 연극적인 발레를 지칭한다. 이야기 발레라도 춤의 향연을 펼치는 19세기 클래식 발레와 달리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중시한다. 노이마이어는 기존 클래식 발레의 참신한 재해석이나 다양한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한 추상 발레도 뛰어나지만, 소설과 희곡 등 문학에서 소재를 가져온 드라마 발레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 발레의 소재로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노이마이어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을 읽으면서 우선 감정적으로 통해야 하며 발레로 만들어졌을 때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쇼팽의 음악을 활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원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편곡해 사용하려고 했지만, 가사 없는 오페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친한 피아니스트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쇼팽이나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추천했다”면서 “쇼팽의 음악을 듣는 순간 ‘카멜리아 레이디’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직감했다.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쇼팽의 인생이나 젊은 시절부터 질병에 시달렸던 삶이 그 음악에 담겨 있는데, ‘카멜리아 레이디’ 속 캐릭터들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잘 맞았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