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와 쌀국수, 아오자이로 상징되는 나라 베트남. 최근에는 중국 공급망 이탈 흐름 속에서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으며 2022년 세계 최상위권인 8% GDP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모세(가명·60) 선교사가 수도 하노이에 입성한 1996년 3월, 베트남은 여전히 닫힌 땅이었다.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신앙과 표현의 자유는 엄격히 제한됐다. 엄혹한 시대, 그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북부 지역에 조심스럽게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삶을 걸고 심은 씨앗은 29년을 견디며 싹을 틔우고 있다.
지난 25일 이 선교사는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하노이 시내 한 식당으로 찾아와 국민일보와 만났다. 오랜 세월 현지인처럼 살아온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하노이 사람 같았다. 낡은 오토바이 헬멧을 벗으며 건넨 첫 인사에도 도시의 분주함보다 묵직한 소박함이 배어 있었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항자교회 하나만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었죠. 전화, 이메일, 우편, 팩스 모두 도청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산하 총회세계선교회(GMS) 파송 선교사인 그는 살아남기 위해 ‘비즈니스맨’이라는 신분을 택했다. 1998년 하노이에 작은 수제 기념품 가게를 열고 조심스럽게 사회에 스며들었다. 삶을 함께 나눈 이들이 그의 첫 선교 대상이 됐다. 집에서 일하던 가사 도우미가 첫 번째 세례자가 됐고 이어 가게 직원이 두 번째 세례를 받았다. 당시 수제 기념품을 납품하던 소수민족과도 이때 관계를 맺었다.
지난해 열린 제4차 로잔대회에서 ‘일터 사역’ 트랙이 전체 참가자 3분의 1의 선택을 받을 만큼 주목받은 것과 달리 1990년대 후반 비즈니스 미션은 생경한 단어였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반감이 더 심했다. ‘왜 선교사가 장사를 하느냐’는 비판이 그를 따라 다녔다.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비즈니스 신분 덕분에 자연스럽게 베트남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복음이 흘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비즈니스 자체를 선교로 바라보는 변화를 보면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위로를 받습니다.”
8년간의 비즈니스 경험은 이후 그의 사역에 단단한 철학적 기반이 됐다. 관계 중심의 선교, 자립을 중시하는 원칙이 이 시기에 뿌리내렸다. 이 선교사는 이후 굿네이버스 베트남 북부 지부장으로 약 10년 동안 일하며 지역개발과 아동개발 사업을 이끌었다. 퇴임 후에는 베트남 북부 지역의 몽족(Hmong) 교회들을 대상으로 ‘교회주도형 마이크로크레딧’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현재까지 6개 교회가 참여해 100% 상환율을 기록하고 있다. 각 교회에서는 8~10명이 한 소그룹을 구성해 개인당 약 800만동(한화 약 40만원)을 대출받았다. 참여자들은 돼지나 닭을 키우거나 레몬그라스를 재배하는 방식으로 자립 기반을 다졌다. 1년 만기 상환에 연 3% 이자를 더해 교회 공동 헌금으로 적립하는 구조다. 교인들의 소득이 늘면서 교회 헌금도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자립교회를 이루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기금을 발전시켜 지역사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비즈니스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자립 모델을 이해하거나 적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퍼주기식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게 돕는 것. 그것이 진짜 선교입니다.” 이 선교사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흐몽족을 비롯한 베트남 소수민족은 전체 인구의 약 11%를 차지한다. 북부 지역 크리스천의 약 80%가 몽족 출신이다. 몽족 교회는 약 2000여개에 달하지만 여전히 목회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선교사는 신학교 교수로 흐몽족 청년들을 양성하는 한편 마이크로크레딧 사역을 통해 교회와 지역사회 자립을 돕고 있다.
현재 베트남의 복음화율은 현재 약 1.5%에 불과하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특히 복음화율이 더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공식적인 복음화율 집계조차 어렵다. 복음 전파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더디다.
그러나 2007년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종교 정책에도 점진적 변화가 일어났다. 2010년 전후로 외국인 종교활동이 일부 허용됐고 이 선교사도 이 흐름에 올라탔다. 3년 전부터 한인교회인 하노이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최근 그의 사역은 한베가정(한국-베트남 국제결혼으로 이뤄진 가정)과 가나안 한인 성도(교회를 다니지 않는 신앙인)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선교사는 “올해 하노이 한인국제학교 신입생의 60%가 한베가정 출신”이라며 “과거 한베가정에 대한 이미지가 ‘인력수출’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연애결혼이 주를 이룬다. 베트남 신부들은 대부분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베가정의 2세대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모두 구사하는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은 혼혈에 대한 편견이 적고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며 “한류의 영향과 맞물려 한베가정 2세대는 베트남 현지에서 높은 잠재력이 있다. 미래의 복음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하노이=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