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애, 공감에서 동역으로’…장애인 주일 맞은 한국교회 가보니

입력 2025-04-27 15:54 수정 2025-04-27 16:18

27일 오전 11시. 인천계산교회(김은성 목사)에 들어서자 “장애 공감 부스 체험하고 가세요”라는 봉사자들의 인사가 들려왔다. 이날 교회는 장애인 주일을 맞아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장애 공감 부스를 운영했다.

“물 주세요.” 청각장애 공감 부스에서 서툰 몸짓으로 수어를 배우던 방영자(81) 권사는 오른손을 입 가까이 가져다 대며 물을 구매하는 상황을 반복해 연습했다. 방 권사는 80년간 수어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수어가 청각장애인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생각을 했고 늦었지만 배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부스에선 볼록볼록 나와 있는 점자를 공부하고 눈을 가려 원하는 음료를 고르는 체험을 선보였다. 안대를 낀 신이빈(11)양은 “음료수에 적힌 점자에 모두 ‘음료’라고 적혀있어 내가 마시고 싶은 음료를 고르지 못했다”며 “장애가 있는 분들이 불편함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손지민(11)양은 “장애인이 우리와 만나더라도 특별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하나 되는 예배


교회와 예배당 입구에선 여덟명의 청년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안내하고 있었다. 이들은 20세 이상 지적장애인 공동체 ‘청년베데스다’ 청년이었다. 최혜성(29)씨는 “교회 안내를 처음 해봤는데 교인분들이 웃으면서 맞아주셨다”며 “칭찬도 많이 받고 엄지를 올리며 ‘최고’라고 해주셔서 뿌듯하다”고 전했다.

10년간 이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황선자(69) 권사는 “장애인 주일 행사와 청년베데스다 안내 봉사는 교회가 장애가 있는 이들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함께하는 과정”이라며 “봉사를 자원한 청년들을 안내봉사자로 세웠는데 오늘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는 지난해부터 행사를 시작해 올해는 그 규모를 확대했다. 김은성 목사는 “지난해 장애인주일을 보내며 교회 안에서 장애인 성도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고, 사랑을 실천하는 변화를 느꼈다”며 “온 교회가 장애인주일을 함께 지키며 기쁘게 공감하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앞서 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는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장애인 주간으로 지정해 다양한 체험과 전시를 열었다. ‘다름 아닌 닮음으로’를 주제로 진행된 행사는 수어 배우기 점자 구역체험 휠체어체험 등 장애를 인식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시각장애인 국악인 이현아씨와 김용익 영락농인교회 목사 등을 초청해 장애인과 친밀해지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제자훈련으로 선교의 장 넓힌다

김부림(왼쪽) 목사와 민성욱 집사.

장애인 성도를 위한 제자훈련 교재를 선보인 교회도 있다. 서울 동작구 강남교회(고문산 목사)는 27일 장애인 주일을 맞아 ‘장애인과 함께하는 제자훈련’을 출간했다. 장애라는 벽에 막혀 제자훈련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 장애인 성도를 위해 제작했다.

장애인부 디렉터 김부림 목사는 “매년 장애인 성도들이 제자훈련을 신청하지만 여러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장애인을 포함해 누구나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교재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 8개월여만에 완성했다. 김 목사는 “‘장애인부가 우리교회의 자랑이고 축복이다. 무엇을 하든 교회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담임목사님의 응원과 성도님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 속에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며 “교재가 우리교회뿐 아니라 장애인 선교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교재는 ‘씨뿌리기’ ‘꽃피우기’ ‘열매 맺기’등 총 3권으로 구성됐다. 각 권에선 장애인 성도들이 실제로 겪는 고민과 상황을 반영해 단답형 질문과 역할극, 구어체 설명, 직관적 그림 등으로 성경 지식을 쉽게 풀어냈다. 제자훈련은 총 12주 과정이다.

김 목사는 “지적장애를 가진 성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성령·은혜 등 핵심 단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돌봄을 넘어 ‘동역’으로


교재에 들어간 200개 넘는 삽화는 모두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민성욱 집사가 직접 그렸다. 표지에 들어간 그림 역시 민 집사의 작품이다. 그는 성인 장애인 성도로 구성된 밀알부 소속이다. 한국파스텔화협회 정회원이기도 한 민 집사는 “내가 그린 그림이 책으로 나오는 게 꿈을 꾸는 것 같다”며 “작업 내내 기도하며 장애인도 교회에서 주체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교재를 통해 장애인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남교회는 이번 교재 출간을 계기로 장애인 선교가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단순한 돌봄이나 복지 차원을 넘어 장애인도 교회의 동등한 제자, 동역자로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교회는 오는 주일부터 장애인 성도 전체를 대상으로 12주 과정에 걸친 제자훈련 여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김 목사는 “교회는 장애인도 하나님 안에서 동등한 존재임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예배하며 훈련받고 전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장애인과 동등한 제자공동체를 이루는 데 동참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인천=박윤서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