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부추밭 3

입력 2025-04-27 14:19

유난히 나를 사랑하시던 할머니는 얼굴이 계란형이었다. 건장한 키의 미모를 지닌 분이었다. 첫딸을 해산한 후 풍치로 시달리다 34개의 이를 뽑았으니 두 번째 내 아버지인 아들을 해산한 후 단산하셨다고 했다.

그 시대에 아들딸 둘만 낳았으니 그 귀한 고명딸이 결혼해 아들 둘을 데리고 남편의 외도에 시달리다 친정으로 돌아온 딸에게 불호령을 쏟아내며 그 집귀신이 되라면서 손자들까지 바깥으로 내몰고 대문을 잠가 버렸다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남동생인 내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고모와 조카들과 함께 지내는 축복을 아버지가 발로 걷어찼다고 수년을 아버지와 냉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고모가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다섯 살배기 아들을 손잡고 떠나버린 그 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고 했다. 고모는 그렇게 떠난 후 생사를 알 수 없었다니 할머니의 고통이 오죽하였을까.

봉건사상에다 완고한 할아버지의 성화에 결국 어린 자식들 데리고 정처 없이 떠나버린 고모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원망하던 할머니의 얘기를 자주 듣다 보니 할아버지 곁에 앉아있기도 싫었다.

할머니의 힘겨운 청춘의 때 반세기도 지난 오랜 옛일임에도 남편이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내 어린 시절 할머니는 이따금 “연이야!”하고 고모 이름을 부르시며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훔치셨다.

연약한 몸으로 하늘의 선녀처럼 생각하던 딸과 생이별을 하고 난 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후 다시 건강을 회복했으며 어린 나를 당신 생명처럼 사랑했다. 고모를 대신해서 당신의 모든 정을 내게 쏟으셨다는 것을 늘 실감했다.

어느 날 내 아마에 벌이 쐬어 염증이 생겼다. 할머니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더니 엄마가 솜을 들고 고름을 짜려는데 엄마를 떠밀고 당신 입으로 내 미간의 고름을 다 빨아내셨다. 어머니는 내 얼굴의 여기저기가 곪았지만 할머니의 특별한 사랑의 힘 덕분에 아무 데도 흉터 없이 잘 자란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부추 한 단을 다듬으며 나는 지금도 고향의 텃밭 부추 향기에 취해 있다.

<굴렁쇠>
-김국애

나는 굴렁쇠
부지런해서 얻은 별명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천성
수족이 반질반질 닳아서
훤칠하게 자라지도 못했다
구르는것 굴렁쇠의 본능이다
88올림픽 개회 첫날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힘차게 경기장을 돌았다
진화하는 세계속에서
경탄의 오프닝. 한 컷
팔십억 목숨을 싣고
침몰할 듯 삐걱이며
지구도 굴러간다

하늘에 매달린 해와 달,
뚜욱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제작자 신의 걸작품
굴렁쇠처럼 한 묶음 되자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사람으로 지음 받은 형제애
매듭 없는 굴렁쇠에 엮어
지구촌이여 한 묶음 되자
인류여. 해처럼 빛나자
알파와 오메가의 길이만큼
정점에 이를 때 까지
살아 있으므로 굴러가는 것.
지구를 빛어낸 야훼의 손길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