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부추밭 2

입력 2025-04-27 14:09

말로 보답할 수 없는 큰 사랑과 망각했던 지난 추억을 조목조목 헤아려본다. 유난히도 화초를 사랑하던 부모님, 논밭에 푸성귀를 온 정성 다해 가꾸시던 할머니가 내게 쏟으신 그 사랑의 모습들은 이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한 포기의 화초도 사람의 섬세한 돌봄에 향기와 고고한 자태로 갚아주는 자연의 이치를 우리는 누리며 살아간다. 나도 어느새 어머니와 할머니의 발자취를 밟아가고 있다.

땅속에 떨어진 부추 씨앗에게 물과 거름을 골고루 나눠 먹이듯이 시기와 때를 지켜서 관리하는 것이 곧 사랑의 행위가 아닐까 싶다. 자연은 말하거나 누군가 일일이 일러주는 일이 없이도 모든 과정마다 암묵적 약속처럼 우리를 일깨워 준다. 목마르면 시들고 물이 넘치면 뭉개지고 땡볕에서는 타버린다.

논밭에 함께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한 알의 씨앗에 눈을 맞추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관심이고 사랑임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식물 세계에서도 상품의 가치 평가에 미치지 못한 것을 잡초라고 부른다. 사람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분명한 소속이 없이 살면 “떠돌이 인생, 잡초처럼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 단어 속에는 삶의 고뇌와 외로움과 고독을 압축한 것이다. 어디서나 푸대접 속에 내버려 진 소외된 자신을 대변한 말일 것이다. 음지에서 자란 힘없는 풀포기 같이 살아가는 삶, 돌봐줄 이가 없는 삶, 운명이라는 명패가 달려 내던져 버려진 것을 의미한 것이리라.

세상에서 버려진 잡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샛길 오솔길 논두렁 밭둔덕. 시커먼 흙먼지와 구둣발에 차이고 밟혀도 쉽게 바스러지거나 뭉개지지 않는다. 아무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데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데 그 목숨이 질겨서 살아남았을까. 어디엔가 숨겨진 손길이 있었길래 너와 내가 지금까지 건재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진작에 쓰러져 자취도 없었을 것을, 웬 은혜인가. 사랑하는 이들이 영원 저 너머로 가버렸어도 여전히 나는 그 숭고한 사랑의 숨결을 선명하게 느낀다. 이것이 나를 가끔 놀라게 한다. 다섯 명의 손자 손녀를 받은 할머니의 관점에서 여린 부추밭을 반죽음되게 밟아주던 그 행위가 단순한 일이 아니었음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고스란히 그 사랑 속에서 숙주나물처럼 자랐다면 어디에 써먹겠는가. 잔인할 만큼 따가운 햇볕과 후려치는 장대비의 아픔이 키워낸 푸성귀처럼 나를 통해 사람으로 태어난 내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숱한 얘기들이 가슴에 가득하다. 태어남으로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내 삶을 가능하면 진솔하게 남기고 싶은 진심을 흔하디흔한 부추밭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찾아온 三月>
- 김국애

담장 밑 양지 바른 곳
움 다시 돋아나면
꽃망울들은 시샘 내어
함께 터지고
참새들도 떼 지어
모여 듭니다

당신과 함께 봄볕을 즐기던
양재천 그 나무벤치
아무 근심 없던
그대의 너털웃음
지금도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날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고이는 그리움,
분명 그때
그 봄입니다
당신은 오지 않고
三月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