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정책 중 전 세계를 가장 충격에 빠트린 것은 관세정책이다. 트럼프 한 사람의 무차별적인 관세 고집이 상호호혜적인 자유무역 질서에 기반을 둔 글로벌 공급망을 하루아침에 교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상호관세, 품목관세, 기본관세 등을 쏟아내며 기존의 자유무역협정은 사실상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관세 정책은 시장 불안을 자극했다.
트럼프는 지난 2일 백악관에서 ‘해방의 날’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직접 각국의 관세율을 기록한 도표를 들고나와 일방통보하듯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한국 25%, 유럽연합(EU) 20%, 일본 24% 등 57개 경제주체(56개국+EU)에 대해 자의적으로 산정한 관세였다. 이중 10%의 기본관세는 지난 5일 발효됐고, 9일 발효됐던 국가별 개별 추가관세는 중국을 제외하고 90일간 유예된 상태다. 산정 근거도 상대국과의 무역적자를 토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산정했다는 지적이 대체적이다. 트럼프 자신이 생중계로 발표한 관세율과 행정명령 부속문서에 적힌 세율이 달라 혼선이 벌어지기도 했다.
품목별로도 관세가 쏟아졌다. 지난달 12일부터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가 부과됐고, 지난 3일에는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가 발효됐다. 반도체,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줄줄이 예고돼 있다.
트럼프의 관세는 정책 자체뿐 아니라 롤러코스터 타듯 여러 차례 번복이 거듭된 변덕도 문제였다. 트럼프는 관세 발표 초기만 해도 “예외나 면제는 없다”고 했지만, 상호관세 발표 13시간 만에 발효를 90일 유예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도 미국 기업의 반발이 이어지자, 자유무역협정(USMCA) 품목에는 적용을 면제했다. 스마트폰과 메모리칩, 노트북컴퓨터 등 전자제품에 대해서도 상호관세를 슬그머니 유예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경제부터 강타했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중국이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S&P500 지수는 급락하며 상호관세 발표 직전 대비 12% 폭락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국 국채마저 투매가 이어졌다. 트럼프는 관세 전쟁이 미국을 ‘갈취하던’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에 맞서 미국을 해방할 것이라고 했지만,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트럼프가 최근 무역 전쟁에서 협상을 강조하는 등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는 것도 시장이 트럼프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기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미국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4개월 연속 하락 흐름을 이어갔고,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는 1981년 이후 4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난 24일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경기침체 조짐이 보이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런 정치적 개입이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더욱 자극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라 관세를 피하기 위한 애플, 소프트뱅크 등 주요 기업들의 투자 약속은 미국 국내에 국한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그룹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미국 우선주의는 자유 무역 질서에 기반을 둔 국제 공급망에는 치명상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실망한 미국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학이 전국 유권자 9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2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트럼프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42%, 부정 평가가 54%로 나타났다.
경제 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55%로 긍정적 평가(43%)보다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를 악화했다고 답한 비율은 50%, 개선했다고 답한 비율은 21%에 그쳤다. 다른 나라와 교역의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53%)가 긍정적 평가(42%)보다 많았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3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트럼프의 업무 수행 지지도는 40%에 그쳤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9%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9%,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9%였다.
퓨리서치센터는 “로널드 레이건부터 트럼프의 전임 대통령 중 취임 100일 시점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한 지도자는 (트럼프를 제외하고) 빌 클린턴(1993년 4월 49% 지지)이 유일했다”며 “ 2021년 4월 조 바이든의 직무 지지율은 59%였다”고 전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