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도입 2개월…종교교육의 미래는 어디로

입력 2025-04-26 17:44 수정 2025-04-26 18:05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지 2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종교교육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대폭 확대한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달리, 종교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전환되면서 기독교 사립학교 등 종립학교의 건학이념과 종교교육의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종교교육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종교교육학회가 한국기독교교양학회,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와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삶과 종교’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3년 동안 192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기존의 중앙집권적 교육과정에 벗어나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재편됐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년제’가 ‘학기제’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학년 단위로 운영되던 교육과정을 학기 단위로 전환되면서 한 학기에 배우는 과목 수는 줄어들고, 과목당 수업시수는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종교 교과’가 포함된 교양 교과군에 있는 과목들은 1학기 동안 과목당 3학점에서 2~4학점으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또한 학년별 종교 과목 배치 불균형 등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종교교육 축소 위기를 맞닥트리게 됐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강화되면서 수능과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 종교 과목은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경이 가톨릭대 교수는 ‘교양교육과 종교교육’이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에서 “종교교육이 교양 교육의 한 축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개편과정에서 전문가 참여와 논의가 부족했다”며 꼬집었다.

김 교수는 “현행 교육 과정상 종교교육은 교양 교과 내에서도 불확실한 위치에 놓여 있고,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교과서 활용 등 실행 과정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며 “많은 학생이 교육과정 안에서 종교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교과서 집필진 간의 자료 공유, 타교과 교사의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종철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부소장은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른 고등학교 종교교육의 현황과 과제: 기독교학교(개신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 “고교학점제 이후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놓였다”며 “특히 종교계 사립학교의 종교교육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고교학점제의 학생 선택 중심 구조는 종교교육의 시수 축소, 교목실 기능 약화, 종교교사 감축 등 현실적 위협을 동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교학점제와 동시에 ‘2022 개정 교육과정’도 적용되면서 ‘종교학’으로 가르치던 종교 과목이 ‘삶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개정됐다. 종교학이 종교에 관한 ‘비판적 성찰 능력’을 강조했다면 삶과 종교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종교적 지혜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개인의 삶과 종교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줬다.

이 부소장은 “교과명의 변경은 단지 명칭의 변화가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라며 “종교계 사립학교에서 종교교육은 건학 정신을 구현하는 ‘중핵 교육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 교육과정과 급변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종교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보완과 학교, 교사, 연합기구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면서 “종교교육의 공공성과 특수성, 신앙교육과 교양 교육의 균형 모색을 통한 자율성 확대, 현장 맞춤형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