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성경은 무슨 뜻?… 명작 속 숨은 이야기 찾기

입력 2025-04-25 14:00 수정 2025-04-25 18:18
2001년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람객이 이곳 걸작 6개 앞에 머무른 시간은 평균 17초라고 합니다. ‘최주훈의 명화 이야기’에 실린 얘기인데요. 무명의 작가나 내용을 모르는 작품이라면 시간을 더욱 짧아지겠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게티이미지뱅크

서구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 소장품을 해석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성경’입니다. 꼭 성경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십자가나 사과, 열두 제자 등 기독교의 상징을 차용한 작품도 꽤 됩니다. “서양 예술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고 제언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그림과 유물로 기독교의 정수를 접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경 속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시대별·작가별로 구현한 방식은 각기 다른데요. 세기의 거장과 제국의 지도자는 성경이 다룬 사건을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두 명의 목회자와 한 명의 의사가 유럽 유수의 미술관과 대영박물관에서 발견한 숨겨진 명작과 유물 속 성경과 역사, 인생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네덜란드 반고흐 미술관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1885) 이 성경은 누구의 것일까요. 위키미디어 커먼즈

‘비운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의 ‘성경이 있는 정물’(1885).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그리스도의 배신과 마가 사도를 쫓는 병사’(1522).

재활의학과 전문의이자 유튜버, 낙도 의료선교사인 박정욱 광주 탑팀재활의학과의원장이 꼽은 기독교 핵심을 드러낸 명화입니다. 박 원장은 영국 내셔널갤러리와 테이트모던,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등의 미술관을 찾아 명화를 감상해온 서양화 애호가인데요. 최근 이때 마주한 명화 20점의 작품 배경과 신앙적 의미를 해설한 책 ‘나는 미술관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생명의말씀사)도 펴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중에게 덜 알려졌지만 현대인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 위주로 선정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네덜란드 반고흐 미술관에 소장된 ‘성경이 있는 정물’은 고흐가 아버지 사별한 뒤 7개월 후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는 성경 옆에 어두운 배경색과 대비되는 노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입니다.

그간 그림 속 성경은 고흐 아버지 것이며 꺼진 양초는 아버지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그간 우세했는데요. 개혁주의 목사인 고흐의 아버지는 선교사로 살다 화가로 진로를 바꾼 아들을 평생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와 의절하다시피 살던 고흐였기에 그림 속 성경은 기독교 세계관을, 졸라의 소설은 고흐의 현대적 세계관을 상징한다고 여겨졌지요.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로 이 성경이 고흐의 아버지나 가족의 것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그렇기에 박 원장은 “고흐는 성경이 아닌 아버지처럼 완고하게 굳은 교리의 개신교를 터부시했다”고 해석합니다. 초인적인 이웃 사랑을 주제로 한 졸라의 소설은 ‘일상 속 영성’을 상징한다고 보고요. “복음과 사랑의 실천은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으로 매 순간 살아내는 태도에 달렸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둘을 의도적으로 배치했다는 겁니다.

이탈리아 파르마 국립 미술관에 소장된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그리스도의 배신과 마가 사도를 쫓는 병사’.(1522) 입던 옷도 두고 달리는 사도 마가의 모습이 다급해 보입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리스도의 배신과 마가 사도를 쫓는 병사’는 이탈리아 파르마 국립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가 알몸으로 로마 군인의 손아귀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엔 한 청년이 체포된 예수를 따르다 무리에 쫓겨 알몸으로 도주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마가라고 보는 성경학자가 다수입니다.

마가의 배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한 선교여행 길에서도 마가는 중도 포기합니다.(행 15:38) 이를 괘씸히 여긴 바울은 이후 선교여행에 마가와의 동행을 거부합니다. 한데 10여 년 뒤 바울은 마가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딤후 4:11)로 칭찬합니다. 마가가 사도 베드로의 지도 아래 신실한 사도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후대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기독교 공동체인 콥트교회를 세운 뒤 그곳에서 순교합니다. 박 원장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사도 마가의 생애 속 두 번의 실패를 보며 위로를 얻는다.… 우리 역시 한두 번은 십자가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칠지언정 주님의 용서 아래 언제든 충직한 청지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독일 화가 크라나흐 부자의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제단화’(1547~1548) 전경. 비텐베르크 시청 광장 옆 비텐베르크시 교회에 있습니다. ‘개신교 찬송의 요람’이자 라틴어 아닌 독일어 예배가 처음 시도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당대 종교·사회 지형을 반영해 기독교의 가치를 보여주는 명화도 있습니다. 독일 화가 크라나흐 부자의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제단화’(1547~1548)와 이탈리아 화가 암브로조 로렌체티의 ‘선하고 악한 정부의 알레고리’(1338)가 그렇습니다. 이 두 작품은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가 추천했는데요.

독일 화가 크라나흐 부자의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제단화’(1547~1548) 4폭 그림 중 하나입니다. 중앙화로 예수와 제자들의 ‘성만찬’을 그렸습니다. 널리 알려진 ‘마지막 만찬’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지요? 위키미디어 커먼즈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제단화’는 개신교 역사와 신학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비텐베르크시 교회에 있는 이 제단화에는 종교개혁 정신을 반영한 예수의 최후의 만찬과 세례, 참회와 설교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독일 화가 크라나흐 부자의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제단화’(1547~1548) 4폭 그림 중 하단에 위치한 작품(프레델라)입니다. 설교자로 나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왜 한쪽 손을 성경 위에 올렸을까요. 위키미디어 커먼즈

독특한 건 제단 중앙에 그려진 예수의 성만찬 그림 속 식탁이 원형이라는 건데요.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제단 맨 아래쪽은 한 손을 성경에 놓은 채 설교하는 루터와 성도들이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그림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라면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을 추구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최 목사는 “종교개혁의 역사와 신학에 관한 풍부한 상징이 담긴 그림”이라며 “‘교회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탐구하기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고 평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시에나 시청 내 ‘9인의 방’에 그려진 벽화 ‘선하고 악한 정부의 알레고리’ 일부입니다. 사진은 선한 정부의 모습인데요. 중앙에 앉은 지도자 머리 위에 있는 천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위키미디어 커먼즈

‘선하고 악한 정부의 알레고리’는 이탈리아의 시에나 시청 내 ‘9인의 방’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믿음 소망 사랑(고전 13:13)을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해 위정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통치할 때 도시가 평안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최 목사는 “로렌체티 벽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적 가치가 세속 공동체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잘 보여준다는 것”이라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논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시각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최 목사는 위 두 작품을 포함한 국내외 명화 37점을 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이야기를 책 ‘최주훈의 명화 이야기’(비아토르)에 담았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 내 페르시아 전시관인 52관에 소장된 ‘키루스(성경명 고레스) 원통’.(왼쪽부터) 기원전 6세기의 것으로 현재 이라크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 바빌론의 폐허에서 1879년 발견됐다고 합니다. 박양규 목사 제공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영국 애버딘대에서 신구약 중간사 박사과정을 수료한 박양규 삼일교회 협동목사는 ‘키루스(성경명 고레스) 원통’이라고 단언합니다. ‘대영박물관에서 다니엘 읽기’란 부제를 단 신간 ‘다니엘 수업’(샘솟는기쁨)을 펴낸 그는 페르시아 전시관인 52관에 전시된 이 유물을 “구약성경의 사건에 역사의 옷을 입힌 자료”로 평합니다. BC 539년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바빌론(성경명 바벨론)을 무너뜨린 후 그곳에 포로로 잡혀 온 여러 민족을 본국으로 귀환시킨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레스 칙명’으로 불리는 이 내용은 에스라서 1장 1~2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칙명에 따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렘 29:10~11) 70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옵니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키루스(성경명 고레스) 원통’ 정면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즈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한 시점이 적힌 유물도 대영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바벨론 전시관인 55관엔 네부카드네자르(성경명 느부갓네살)이 BC605년에 예루살림을 침공했다는 내용을 쐐기문자로 기록한 유물입니다. 전시관에는 이외에도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 느부갓네살에 관한 유물이 적잖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 내 바빌론(성경명 바벨론) 전시관인 55관에 있는 ‘유일신’ 관련 유물. 다신교 사회였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유일신 흔적이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양규 목사 제공

박 목사는 이중 ‘유일신’(One God)에 관한 유물이 인상 깊다고 했습니다. “바벨론에 유일신 흔적이 나타난 건 유다 포로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고 기록한 박물관의 설명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는 이유입니다. “제국의 흥망성쇠가 담긴 유물을 보며 성경의 본뜻에 더 다가서고,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고민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바란다”는 그의 제언은 우리 각자에게도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