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1878~1965)는 생전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종교 관련 강의를 했다. 청중이 모두 종교인은 아니었기에 강연 후에는 자연스레 질의응답과 토론의 장이 열렸다. 주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부버는 1953년 펴낸 이 책에서 강연으로 만난 두 사람과 나눈 대화를 실었다. 두 사람은 독일 중부 도시의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한 노동자와 독일의 유명 철학자인 파울 나토르프다. 둘 모두 하나님에 관해 논쟁을 벌였는데, 의견을 나눈 뒤 나온 반응은 사뭇 달랐다.
전자와의 대화에서 저자는 “내 경험상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님이란 가설은 굳이 필요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듣는다. 상대가 부러 ‘가설’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을 직감한 그는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따라 답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인간의 고유한 감각이 만나 생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빨간색을 본다는 건 이를 느끼는 눈과 빨강을 만드는 파장이 마주하는 동안 지속하는 것 아닌가.… 불확실한 이 세계에 확실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있는가.” 상대는 “선생의 말씀이 맞다”며 더는 질문하지 않는다. 일방의 입장만 오간 대화에 저자는 아쉬움을 보인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인 나토르프와의 대화는 길게 이어진다. 저자의 강의 초안을 접한 그는 “어떻게 하나님이란 단어를 번번이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느냐”며 “인간의 언어 중 그 단어만큼 남용되고 더럽혀진 말이 있는가”라고 격정적으로 되묻는다. 저자는 일견 수긍하며 응수한다.
“하나님이란 말은 인간의 모든 언어 중 가장 문제가 많은 단어다. 인간은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인다.… 그렇지만 인간이 가장 고독한 어둠 가운데 만난 절대자를 ‘그’가 아닌 ‘당신’이라고 부르며 탄식한다면, 이때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나토르프는 부버를 향해 “(선생이 아닌) 당신으로 부르겠다. 이제 친구가 되자”며 손을 건넨다. 저자의 소감이다. “대화는 완결됐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함께 있다면 그건 하나님 이름으로 함께 있는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들 일화는 저자의 핵심 이론인 ‘대화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존재를 인격적 ‘상대’와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통찰력 있게 제시한 그의 대표작 ‘나와 너’를 1923년 출간하면서 유럽 철학계에 이름을 알린다. 1930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대 교수가 됐으나 유대 혈통이란 이유로 3년 뒤 나치에 의해 교수직을 잃고 여러 나라를 전전한다. 1938년 예루살렘 히브리대 사회철학 교수로 임용 후 미국 각지 강연에 나선 저자는 이때부터 세계적 사상가로 명성을 얻는다. 책은 이 시기 강연한 내용과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 직후 세계는 물론 사상계도 폐허가 됐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인 것이다”(프리드리히 니체) “신은 우리에게 말했었지만 지금은 침묵한다. 우리는 그의 시체만 만지고 있다”(장 폴 사르트르) 등의 주장이 득세했다. 저자는 이들의 말이 참인지를 치밀하게 논증하며 신은 죽지도, 침묵하지도 않은 ‘일식(日蝕) 상태’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신의 일식은 우리가 사는 ‘세계 시간’의 특징”이라며 “초월의 실재, 생생하게 약동하는 실재, 우리와 마주한 존재 자체는 어둠의 벽 뒤쪽에서 아무런 흔들림 없이 건재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신의 존재를 아예 지워버린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논리를 하나하나 논박한다. 또한 신의 대용품을 인간에서 찾으려는 시도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신의 죽음’을 논하다 나치 정권을 찬양하는 길로 빠진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대표적이다.
240쪽 분량의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철학서가 낯선 이라면 읽는 게 쉽지만은 않다. 대신 독일 튀빙겐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역자가 책 말미 ‘옮긴이의 글’에 저자의 생애와 철학을 요약해 둬 독해에 큰 도움을 준다. 현대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인만큼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