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가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시립박물관이 없어 6만여점이 넘는 지역 출토 유물들이 다른 지역 박물관으로 흩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인구 100만이 넘는 특례시 중 유일하게 시립박물관이 없는 고양시는 박물관 건립을 위한 용역 예산이 2023년부터 7차례나 시의회에서 삭감되면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양시는 도내동 구석기 유적, 한반도 최초 재배 볍씨인 신석기 시대 가와지볍씨, 고려 공양왕릉, 조선시대 벽제관 등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역사유산을 간직한 도시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오릉과 서삼릉, 북한산성, 행주산성 등 국가지정 문화재와 향토문화재 150여개가 고양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출토된 6만1000여 점의 매장유산은 보관할 곳이 없어 국가 귀속 후 국립춘천박물관, 대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등으로 분산 이관됐다. 이로 인해 고양시민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발굴된 역사적 유물을 직접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고양시는 1990년대 1기 신도시 개발을 시작으로 급속한 도시화를 겪으며 특례시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은 미흡했다. 특히 창릉신도시 개발이 임박한 상황에서 앞으로 발굴될 매장유산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시립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이에 시는 2023년 고양시 공립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등 박물관 건립을 본격 추진했다. 시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거버넌스 포럼 개최, 임시수장고 조성, 비귀속 매장유산 350여점 위탁 확보, 기증운동과 유물 구입을 통해 총 1460여건의 문화유산을 수집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립 관련 용역 예산 확보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계획 수립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는 2023년 본예산부터 올해 1회 추경까지 총 7차례 건립 관련 용역 예산을 요구했지만, 용역 중복성 등의 이유로 모두 삭감돼 문화체육관광부에 사전평가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립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해야 건립비용의 최대 4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시는 2019년 ‘고양시 역사박물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한 차례 진행했으나, 건립 후보지 여건 변화, 건축비와 인건비 상승, 관련 법률 변경 등으로 현재 실정에 맞는 새로운 타당성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고양시와 비슷한 인구 규모의 특례시들은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시민들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공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수원시는 직영 박물관 3개소를 운영 중이고 용인시도 지역사 전문 박물관을 갖추고 있다. 성남시 박물관은 2023년 체험동을 우선 개관했고 창원박물관도 지방재정투자심사를 통과한 상태다.
시 관계자는 “평택시와 포항시의 경우 문체부 공립박물관 설립타당성 평가 후 올해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중앙투자사업 2단계 심사 최종 통과까지 각각 2~5년이 걸렸다. 건립 시작부터 개관까지 평균 7~10년이 걸리는 셈”이라며 “사라져가는 고양시의 역사적 위상을 정립하고 고양시민이 특례시에 걸맞은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해선 박물관 설립 타당성 검토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양=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