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아프리카 난민촌에 싹 튼 한국교회 선교의 씨앗

입력 2025-04-24 07:35 수정 2025-04-25 03:38
말라위 잘레카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23일(현지시간) 거리에 좌판을 펴고 식료품 등을 팔고 있다.

아프리카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북쪽으로 약 41km 떨어진 도와지구에는 대규모 난민 캠프가 있다. ‘잘레카(Dzaleka) 난민캠프’이다. 캠프에는 내전과 대량 학살 위협 등을 피해 인접국인 콩고민주공화국(62%), 부룬디(19%), 르완다(7%) 등에서 온 5만2000여 명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가 산다.

23일(현지시각) 이 캠프에 임시 치과 진료소가 문을 열었다. 치과 진료소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16.5㎡(약 5평) 남짓한 단칸 건물의 진료소에는 한국 치과에서나 볼 법한 최신식 전동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치과 진료소를 운영하는 강지헌(65) 선교사는 “한국에서 공수한 최신 기계이다”며 “인근 도립병원에도 이 정도 수준의 기계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강 선교사의 진료 현장에는 그의 제자로 말라위대학교 보건대학의 치의과 학부생 이삭 루크 줄리오(25)씨와 노엘 카수페(24)씨 그리고 강 선교사가 운영 중인 에파타치과진료소 직원 도린 음비리카(29)씨가 동행했다.

강 선교사는 제자들이 직접 환자를 볼 기회를 주고자 간단한 진료는 맡긴 채 곁에서 틈틈이 조언을 건넸다.
강지헌(왼쪽) 선교사가 이날 난민캠프 내에 마련된 임시 치과 진료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진료를 보는 모습.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뒤로하고 이 캠프 난민들을 돕고 있는 YWAM(예수전도단) 관계자와 함께 캠프를 둘러봤다. 캠프는 단순히 난민 수용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마을 공동체와 같았다. 판잣집 형식의 각종 상점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었고, 너른 공터에서는 난민들이 제각기 흙바닥 위에 천을 깔고는 토마토, 카사바 등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캠프 밖에선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기에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캠프 내에서 뭐라도 구해 팔아보려는 것이다.

얼마 뒤 한 건물 앞 천막 아래 수백 명의 사람이 줄을 지어 서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YWAM 관계자는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며 “매달 난민들에게는 1인당 1만5000콰차(한화 약 1만원)씩 나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달을 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난민 캠프 입구와 사람들이 난민 캠프 내 천막 아래에서 배급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캠프 내 한 거리에 집을 짓기 위한 벽돌들이 놓여 있다(위에서부터 아래로).

말라위는 아프리카에서도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IMF 통계 기준 2024년 1인당 GDP는 고작 481달러에 불과하다.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대한민국의 1인당 GDP를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527달러 정도니 이보다도 낮은 셈이다. 그러나 난민 캠프에 머무는 이들은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캠프는 원래 최대 1만2000여 명을 수용하도록 설계됐는데, 계속해서 늘어나는 난민으로 과밀화 문제가 빚어졌고, 이는 자원 고갈로 이어졌다.

헨리 랄리(33) 잘레카보건소장은 “이곳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물과 식량 문제이다”며 “배급량은 한계가 있는데 난민은 계속 늘어나니 분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음식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많고, 제대로 된 배수가 이뤄지지 않아 아이들이 더러운 물과 그로 인한 말라리아 질병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이다”고 덧붙였다.

랄리 소장은 “강지헌 선생님이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는 진료소 건물은커녕 제대로 된 진료실도 없었는데 이렇게 치과 진료소가 생겨 캠프 내 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강 선교사는 “지속 가능한 자립을 위해서라도 난민 캠프 인근 도립병원의 ‘테라피스트’(간단한 치과 진료가 가능한 치료사)들이 정기적으로 이곳에 와 진료할 수 있도록 캠프 측과 협의 중이다”고 말했다.

난민 캠프 모습

난민 캠프가 들어선 부지는 과거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됐던 곳이다. 캠프 이름인 ‘잘레카’는 말라위 공용어인 치체와어 ‘은잘레카(N’dzaleka)’에서 유래했는데,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숨겨진 뜻과 달리 이날 캠프에서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만난 카수페씨는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치아 문제로 고통이 심했음에도 지역병원뿐 아니라 중앙병원에서조차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고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걸 본 후로 치과의사를 꿈꾸게 됐다”며 “강 교수님의 난민 캠프 무료 진료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고 봉사에 기꺼이 동참했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님으로부터 늘 돈이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진료에 임하라는 걸 배웠다”며 “앞으로 강 교수님처럼 치과 진료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말라위 사람들을 찾아가며 양질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 선교사가 이날 진료를 마친 후 진료팀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줄리오씨도 “치과의사의 꿈을 품고 2021년부터 공부를 시작한 제게 강 교수님은 늘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고, 꿈꾸는 것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일의 중요성과 함께 환자뿐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의 중요성도 늘 강조해서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줄리오씨는 이어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내가 받은 소명을 펼쳐나가는 모습을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잘레카(말라위)=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