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인극에 멀티캐스팅 많은 이유는?

입력 2025-04-24 05:00
연극 ‘지킬앤하이드’에는 최정원(왼쪽부터), 고훈정, 백석광, 강기둥이 캐스팅됐다. 글림아티스트·글림컴퍼니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대에 단 한 명의 배우가 출연해 공연을 끌고 가는 1인극, 즉 모노드라마는 ‘배우 예술의 꽃’으로 불린다. 일반적인 연극에 비해 몇 곱절 힘들어도 배우가 자신의 연기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서다. 다만 혼자만의 힘으로 관객을 설득하고 교감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베테랑 배우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선 1977년 초연된 고(故) 추송웅의 ‘빠알간 피터의 고백’이 모노드라마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모노드라마 붐이 불었지만 몇몇 작품을 빼고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잊혀졌다. 작품의 완성도가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배우의 치열한 장인정신을 느끼기 어려웠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다만 2004년 초연한 유순웅의 ‘염쟁이 유씨’와 2005년 초연한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은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아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최근 모노 드라마 열풍을 다시 일으킨 것은 2019년 초연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게 된 청년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싼 24시간을 그렸다. 초연 당시 큰 인기를 누린 이 작품은 지난해까지 네 시즌이 공연됐다. 두 번째 시즌까지 손상규와 윤나무의 더블캐스팅이었지만, 세 번째 시즌부터는 여배우 김신록과 김지연이 가세한 4명이 번갈아가며 출연했다.

음악극 ‘노베첸토’는 오만석(왼쪽부터), 주민진, 유승현, 강찬이 번갈아가며 출연한다. HJ컬처

올 상반기에도 연극 ‘지킬앤하이드’(~5월 6일까지 대학로 TOM 2관)를 시작으로 음악극 ‘노베첸토’(~6월 8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2관), 연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4월 30일~5월 25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5월 16일~6월 2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등 1인극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들 1인극은 멀티캐스팅, 즉 여러 배우가 동시에 캐스팅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소 4명 이상이며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동명 소설을 1인극으로 만든 ‘지킬앤하이드’는 배우가 혼자서 8개의 역할을 연기한다. 공연은 지킬의 친구인 어터슨의 시점에 따라 진행되며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했다. 최정원, 고훈정, 백석광, 강기둥 등 배우 4명이 번갈아가며 출연한다. 또 ‘노베첸토’는 평생 배에서 살며 육지를 밟은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을 그렸다. 극 중 11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로는 오만석, 주민진, 유승현, 강찬 등 4명이 캐스팅됐다.

연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 포스터.

‘화이트래빗 레드래빗’은 배우가 무대에 오른 뒤 처음 보는 대본을 읽어가며 지시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기를 펼치는 작품이다. 한 명의 배우가 단 한 번의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2017년 국내 초연 당시 6회 공연에 6명의 배우가 출연한 바 있다. 올해는 33회 공연에 80대의 박정자부터 20대의 문유강까지 33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그리고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록 콘서트 형식의 1인극으로 재해석했다. 극작 및 작곡 과정에 AI 기술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햄릿 역에는 옥주현, 신성록, 민우혁, 김려원 등 4명이 캐스팅 됐다.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 포스터.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과거에는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이 1인극에 주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역할에 대한 배우의 해석 등 연기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요즘 배우들은 예전보다 부담을 느끼지 않고 도전한다”면서 “작품보다는 배우가 중심인 국내 공연계에서 1인극은 관객이 좋아하는 배우의 매력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또한 멀티 캐스팅으로 배우와 제작사의 부담도 적다”고 분석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