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방산 블록화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방산 기업들이 유럽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2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5일 폴란드 방산 기업 WB그룹과 합작 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가 51%, WB그룹 자회사인 WB일렉트로닉스가 49% 비율로 출자할 예정이다. 합작 법인은 폴란드군에 공급할 80㎞급 천무 유도탄(CGR-080)의 현지 생산과 더불어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 거점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는 연내 루마니아에 K9 자주포와 K10 탄약 운반차 생산 공장 건설에 착공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7월 루마니아와 K9 자주포 54문, K10 탄약 운반차 36대 등을 공급하는 1조400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와 폴란드형 K2 전차(K2PL) 생산·납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신규 컨소시엄 합의서를 체결했다. 2022년 1차 계약과 달리 2차 계약에는 일부 물량의 현지 생산 조건이 포함됐다. 2차 계약 규모는 약 60억 달러다.
국내 방산 기업들이 유럽에 잇따라 생산 공장을 세우는 것은 유럽연합(EU)이 비유럽 국가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5년간 8000억 유로(약 1300조원)를 투자해 역내 무기 구매 비중을 65% 이상으로 확대하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엔 ‘세이프(SAFE, Security Action For Europe)’ 프로그램을 통해 1500억 유로 규모의 무기 공동조달 대출금을 지원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유럽 재무장 자금이 해외로 흘러가는 건 유럽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조달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지 조립이나 합작 생산은 사실상 필수인 셈이다.
한국이 제3국으로서 실질적 제한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유럽 방산 시장의 주요 협력 파트너라는 점에서 기회가 열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EU 안보·방위 파트너십 체결국으로서 SAFE 계획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EU의 유럽산 무기 구매 비중 확대 계획이 한국의 방위산업에는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한국은 EU 안보·방위 파트너십 체결국이라는 지위가 있다는 점에서 EU 아웃리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