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서 아직 배정도 되지 않은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한 정황이 포착됐다. 외교부는 APEC 행사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측은 국회 고유 권한인 예산심의권을 무시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재정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외교부는 경상북도, 경주시 등과 함께 APEC 정상회의 만찬장 조성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추경) 40억원가량을 요구했다. APEC 정상회의 만찬장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오는 9월까지 지상 1층, 연면적 2000㎡ 규모로 건립할 계획이다.
정부는 애초 만찬장 건립 총사업비로 80억원을 계획했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을 거쳐 예산에 반영된 건 40억원에 그쳤다. 이에 정부가 추경을 통해 40억원을 추가로 배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중 20억원은 만찬장 건립, 나머지 20억원은 신라역사관 또는 특별전시관 등의 개보수에 들어갈 예산이다.
문제는 추경안 심사도 전에 정부가 만찬장 건립 사업 절차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외교부와 경상북도 등은 지난 2월 만찬장 건립 용역 공고를 띄우며 ‘60억원’을 총 공사비로 고지했다. 40억원의 예산만 배정된 상태에서 20억원을 더 얹져 공고를 띄운 것이다.
외교부 등은 추경안도 나오기 전인 지난달 12일 공고 결과를 발표해 A업체를 선정했고, 해당 업체는 실시·설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이재정 의원은 “추경이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20억원을 추가한 예산을 사업 배정한 것은 국회 고유 권한인 예산심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만찬장 건립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20억원 배정도 경상북도의 예비비를 활용했으며 추경을 통해 예산을 받지 못해도 사업에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APEC 정상회의 만찬장은 개최지 경주의 역사·문화적 상징성 등을 담아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게 될 중요한 장소”라며 “취지에 부합하게 만찬장을 조성하기 위해 60억원의 만찬장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 진행과 관련해서는 “정상회의 1개월 전 만찬장 조성을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라 경상북도 예비비를 투입해 설계용역을 추진 중”이라며 “추경이 늦어지면 지방비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