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중앙은행, 정치인만큼 현실적일 필요…계엄 후 침묵할 수 없었다”

입력 2025-04-22 10:06 수정 2025-04-22 10:30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학자는 때로는 정치인만큼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며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추경예산 편성을 촉구한 이유를 밝혔다.

이 총재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교정책협회(FPA)가 수여하는 메달을 받은 후 만찬사에서 “중앙은행 총재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대통령 탄핵이 조기 대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에 대한 양당의 견해가 상반된 가운데 재정부양책을 언급할 경우 정치적 편향으로 비칠 수 있었다”면서도 “계엄사태 이후 내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위축되고 있었다. 금리 인하와 함께 어느 정도 추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신용등급을 지키기 위한 추경 제안이었다는 게 이 총재의 설명이다. 그는 “추경안이 초당적으로 통과된다면 한국의 경제정책만큼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메시지를 국제 투자자들에게 줄 수 있어 국가신용등급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재는 “최근의 정치적 난관들 속에서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것뿐 아니라 정치로부터도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은은 민감한 시기에도 계엄사태가 우리 경제와 환율에 미친 영향 등과 같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안에 균형 잡히고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가를 하고, 가장 필요한 시점에 객관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 총재는 국내 정치 상황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작년 말 계엄령 선포 이후 고조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그간 대외환경 변화로 인한 어려움을 한층 가중해 왔다”고 표현했다.

최근 세계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수출 중심 구조를 가진 우리 경제는 대외환경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이 총재가 수여한 외교정책협회 메달은 국제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이 역대 수상자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