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세월호 위로, 꽃동네 방문도…한국 아낀 프란치스코

입력 2025-04-21 19:33
2014년 8월 16일 방한 당시 시복식 미사가 열린 광화문 광장 주변을 차량으로 돌며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 자료사진
21일(현지시간) 서거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한국을 각별하게 아꼈다. 즉위 이후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고,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하며 4번째 방한을 약속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과도 소통하며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쏟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4~18일 4박 5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그가 즉위 후 세 번째 외국 방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첫 방문지는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 시절 약속된 브라질(2013년)이었고 이듬해 3월 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 순방이 두 번째 외국행이었다.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이 처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꽃동네 장애인 등 고통받거나 소외된 이들과 마주하며 한국 사회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했고 고급 방탄차 대신 준중형 자동차를 이용하는 검소하고 소탈한 행보로 감동을 안겼다.

2014년 방한 당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위로한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
교황은 올해 봄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산불 피해에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한국 가톨릭교회와 행정 당국에 보낸 전보에서 “(교황은) 한국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하여 발생한 생명의 위협과 피해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영혼을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시며,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선에도 한국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인 추기경은 그간 4명이 배출됐는데, 이 가운데 염수정(82) 안드레아 추기경(2014년 서임)과 유흥식(74) 라자로 추기경(2022년 서임)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역대 한국인 추기경 4명 중 2명을 그가 임명한 것이다.

2014년 방한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던 중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나비 뱃지를 선물받은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 대축제인 ‘세계청년대회’(WYD) 차기(2027년)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것에서도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은 필리핀(1995년)에 이어 WYD를 개최하는 두 번째 아시아 국가로 선정됐다.

2014년 한국을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로써 교황의 4번째 방한을 약속한 셈이었다. 비록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후임 교황의 몫으로 남았지만 1984·1989년(요한 바오로 2세), 2014년(프란치스코)에 이어 13년 만에 교황이 다시 방한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14년 방한 당시 꽃동네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
교황이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를 그가 주교로 활동하던 1993년 한국 토종 수도회인 성가소비녀회에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편지에 “아르헨티나인들은 한국에서 오신 수녀님들에게서 성모님을 느끼며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를 봅니다”라고 적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테오도로 알바레스 시립병원에서 활동하던 수녀회가 철수해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성가소비녀회가 수녀를 파견했다. 이들은 스페인어를 거의 못 했지만,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고 교황은 이에 큰 감명을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공존을 위한 8가지 제언’(책세상)에 소개된 프랑스 석학 도미니크 볼통과의 대담에서 환자들이 흡족해했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한국 수녀들이) 소통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미소로”라고 언급했다.

2014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바티칸 교황청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한국 대통령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했다. 그는 2014년 8월 방한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항 영접을 받았고 이어 청와대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2개월 후 방한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박 대통령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과의 재회가 이뤄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통일된 한국에서 교황님을 다시 뵙기를 바란다”고 했고, 교황은 “동북아 평화와 화해, 그리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화답했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과 2021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바티칸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교황청은 문 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결과적으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018년과 2021년 만남에서 교황은 방북 의지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도 이를 적극 권유하고 지지했다.

2021년 10월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에 앞서 DMZ 철조망을 잘라 만든 평화의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황청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직접 만남은 없었으나 간접 소통을 이어갔다. 유흥식 추기경 서임 직후인 2022년 8월 보낸 서한에서 “교황님의 충실한 협력자로 대한민국의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한 20명의 추기경을 새롭게 세우심을 축하드린다”며 “교황님께서 대한민국에 대해 항상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시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9월 한국과 교황청 수교 60주년 기념일을 약 3개월 앞두고 “한국과 교황청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다져온 우호 협력 관계가 더욱 심화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담은 친서를 강승규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통해 보내기도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