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네수엘라인 강제 추방 정책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제동을 걸자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반대 의견을 내고 대법원 결정을 공개 비판했다. 트럼프의 핵심 이민 정책을 두고 사법부에서 논란이 되는 가운데, 대법관들도 이념에 따라 분열하는 조짐이다.
보수 성향의 사무엘 알리토 연방 대법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텍사스주에 구금된 베네수엘라인들을 1798년에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 ·AEA)’으로 추방하려는 조치를 대법원이 차단하자 20일(현지시간) 이를 비판하는 5페이지 분량의 반대 의견서를 발표했다. 반대 의견에는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도 동참했다.
알리토 대법관은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가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인 대법원 결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 “사실적 근거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 결정에 대해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성급하고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법원(대법원)이 받은 자료는 신청자들이 제출한 문서뿐이었고, 법원은 신청자들의 사실적 주장이나 법적 쟁점에 대해 정부 측의 응답을 요청하거나 받은 바도 없었다”며 “심지어 하급심에서 제출된 정부 측의 의견서도 검토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전날 새벽 발표한 결정문에서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AEA를 적용해 텍사스주 블루보넷 구치소에 구금 중인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추방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대법원은 추방 대상자들이 법정에서 변론할 기회를 갖고,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은 후에야 추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에 대법관 2명이 대법관 다수 의견을 비판하는 반대 의견을 발표한 것이다.
알리토 대법관은 “대법원은 한밤 중에 하급심이 판단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반대 측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신청서를 접수한 지 8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실적 근거가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렸다”며 “전례 없고 법적으로 의문스러운 구제 명령”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는 이번 대법원의 명령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당시 상황에서 자정에 명령을 내릴 필요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행정부와 사법부 모두 법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했다.
ACLU는 트럼프 행정부가 블루보넷 구치소에 수감된 베네수엘라인들을 ‘트렌 데 아라과’ 갱단으로 지목해 엘살바도르로 추방하려 한다며 하급 법원과 연방대법원에 추방 일시중단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AEA는 미국 역사상 단 세 차례만 적용됐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 수용소에 구금한 것이 최신 사례일 정도 사문화된 법률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AEA 이용해 불법 체류자 추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AEA는 미국이 다른 국가와 전쟁 중이거나 침략 위협을 받고 있을 때 발동하도록 돼 있으며, 정부가 이민 법원을 우회해 체류자들을 추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법원 결정에 반발하며 다른 법적 수단을 통해서라도 특정 이민자들을 추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CNN은 “대법원은 뉴욕과 콜로라도, 텍사스에서 빠르게 진행 중인 AEA 관련 사건들과 관련, 해당 이민자들의 운명에 대해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추가 설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