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발레계 최고의 화제작은 국립발레단 ‘인어공주’였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동명 동화와 거장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86)의 현대적 상상력이 만나 탄생한 드라마 발레다. 노이마이어의 작품이 국내 발레단에서 전막 공연된 것은 ‘인어공주’가 처음이었다. 앞서 노이마이어는 국립발레단의 리허설을 본 뒤 ‘인어공주’ 개막공연의 타이틀롤로 솔리스트 조연재(29)를 지명했다.
근래 국립발레단의 단골 주역 조연재는 ‘인어공주’에서 세밀한 표현력으로 호평받더니 지난 1월 마침내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2018년 가장 낮은 등급인 코르드발레2로 입단한 지 7년, 솔리스트 승급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원래 수석무용수 정원은 8명이지만, 강수진 단장과 국립발레단이 정원을 9명으로 늘린 덕분이다. 그리고 올해 5월 7~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이 선보이는 노이마이어 안무 ‘카멜리아 레이디’ 개막공연 타이틀롤 역시 조연재에게 돌아갔다. 수석무용수 승급 이후 첫 정기공연을 앞둔 조연재를 최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드라마 발레는 무용수가 역할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요. 제가 드라마 발레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서 지난해 ‘인어공주’ 연습 초반엔 캐릭터 파악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노이마이어 선생님과 트레이너들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드라마 발레는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주인공의 심리 표현을 중시하는 연극적인 발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친정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안무가 존 크랑코(1927~1973)가 20세기 중반 유럽에서 드라마 발레의 전범을 만든 곳이다. 크랑코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노이마이어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의뢰로 만든 작품이 바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동백꽃 아가씨’를 원작으로 한 ‘카멜리아 레이디’다. 1978년 초연과 동시에 걸작의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은 1981년 노이마이어가 예술감독이던 함부르크 발레단에서도 선보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두 발레단만의 레퍼토리였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라이선스가 허가돼 파리오페라발레,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등에서 선보였다. 그리고 올해 한국 국립발레단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라이선스를 획득해 공연한다.
“소설 ‘동백꽃 아가씨’를 읽었지만, 발레에서 폐결핵 걸린 여주인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평상시 걸리지 않던 심한 기침 감기를 연습 초반에 걸렸습니다. 덕분에 상상이 아니라 폐결핵에 동반되는 기침과 가슴 통증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하하.”
특히 ‘카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 단장에게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안긴 작품이다. 한국에도 2002년과 2012년 강 단장이 출연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내한공연으로 선보인 바 있다. 강 단장은 이번에 노이마이어의 트레이너와 함께 국립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 주역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단장님이 눈앞에서 직접 춤추며 감정 표현을 보여주거나 설명하기 때문에 배우는 입장에선 정말 좋아요.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처럼 리허설이 즐거운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춤으로 감정이 오가고 대화를 하는 드라마 발레의 매력을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마농’ 같은 드라마 발레도 추고 싶습니다.”
조연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발레에 재능을 보였지만 중학교 진학 이후 공부를 권유한 부모님의 뜻의 따라 발레를 중단했다. 하지만 발레리나의 꿈을 못 접고 혼자 연습하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발레를 시작해 세종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2018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하며 프로 발레리나로서의 꿈을 이룬 것은 물론 금세 간판 무용수까지 됐다. 국립발레단이 손꼽는 조연재의 최고 강점은 빠른 습득력과 기복 없는 성실함이다. 공연이 없는 주말에도 혼자 연습실에 갈 정도란다.
조연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알게 된 내 몸은 긴장감을 가지고 매일 노력하지 않으면 기량이 빠르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발목이 유연한 대신 약해서 2018년과 2022년엔 부상 당하기도 했다”면서 “부상을 막기 위한 운동을 매일 매일 하면서 무용수로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무용수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자신의 춤에 만족 못하기 때문에 좀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라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