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박주성 “빈 국립오페라 유일의 동양인 솔리스트 된 비결요?”

입력 2025-04-20 12:48
마포아트센터의 상주음악가인 ‘2025 M아티스트’로 선정된 바리톤 박주성이 1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페라극장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 20여 명 가운데 아시아 출신은 1명뿐이다. 바로 바리톤 박주성(32)이다. 지난해 9월부터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주성은 얼마 뒤 겹경사를 맞았다. 바로 마포아트센터의 상주음악가인 ‘2025 M아티스트’로 선정된 것이다. 국내 공연장이 성악가를 상주 음악가로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M 아티스트로서 세 차례 공연을 선보이는 그가 최근 마포아트센터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에서 그동안 공연장의 상주 음악가는 기악 연주자들이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성악가로는 제가 처음인 만큼 책임감과 부담이 큽니다. 하지만 공연 프로그램을 제가 기획하고 결정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통해 성악의 매력을 한국 관객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박주성은 연세대 성악과를 거쳐 2021년 한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영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당시 해외 유학을 하지 않은 국내파인 그가 뽑힌 것은 매우 예외적이어서 주목 받았다. 계기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 대구국제오페라어워즈 온라인 오디션 트레이닝에 제출한 노래 영상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빈 국립오페라극장 관계자가 그의 노래를 듣고 ‘영 아티스트’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바리톤 박주성이 지난 2021년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콩쿠르 본선에서 노래하는 모습. (c)Kirsten McTernan

그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영 아티스트’ 담당 감독님이 내 영상을 보고 ‘뭐 하나 뛰어난 점이 없는 것 같은데 희한하게 매력 있고 기억이 남아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웃으면서 “그동안 내가 국내파로만 알려졌는데, ‘영 아티스트’로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1년 미루고 빈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유학을 한 셈이다”고 밝혔다.

‘영 아티스트’를 미루고 언어와 음악 공부에 힘쓰던 그는 2021년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콩쿠르 본선에 진출한 데 이어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오페랄리아 국제성악콩쿠르 3위에 오르며 기량을 입증했다. 그리고 2022년 9월부터 2년간 ‘영 아티스트’로 활동한 뒤 전속 솔리스트 제안을 받았다. 일종의 인턴 과정인 ‘영 아티스트’ 가운데 전속 솔리스트까지 되는 것은 매우 극소수다. 전속 솔리스트는 한 시즌에 많게는 20개 배역(10개는 커버)을 소화하며 40회 정도 무대에 선다.

그는 “극장이 전속 솔리스트를 제의했을 때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특히 극장장이 바뀌면서 동양인 성악가를 거의 캐스팅하지 않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정말 기뻤다”면서 “전속 솔리스트가 되면서 그동안 이름으로만 알던 수많은 거장과 함께 작업하게 된 것도 영광스럽다”고 피력했다.

바리톤 박주성은 빈 국립오페라극장 전속 솔리스트로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c)빈 국립오페라극장

빈 국립오페라극장이 그를 전속 솔리스트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자신만의 강점으로 언어 구사력을 들었다. 그는 “해외 오페라계에서 동양인 성악가에 대해 낮은 언어 능력과 그에 따른 연기력 부족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내 경우 주변에서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는다”면서 “어릴 때 미국에 거주한 덕분에 영어가 자유로운 편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으로 된 오페라 가사를 정확하게 구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다른 언어 구사 능력과 연기력 덕분에 그는 외부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는다. 지난해엔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필에서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의 솔리스트로 초청받기도 했다. 하지만 빈 국립오페라극장 공연이 워낙 많아서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일찍 제안이 오고 극장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열심히 외부 무대에 서려고 한다.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선보이는 ‘몽키 킹(서유기)’의 세계 초연도 일찌감치 출연 제안이 온 덕분에 성사됐다.

그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한 시즌에 작품이 60개 정도 올라가는데, 연습 기간도 매우 짧다. 그래서 전속 솔리스트가 시즌 중에 갑자기 휴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오페라 못지않게 오라토리오, 가곡 등 콘서트도 좋아하기 때문에 극장 측과 시즌 계약을 맺을 때 외부 출연 조건을 계약에 포함했다. 또한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창작 오페라를 선보이는 경우가 없어서 ‘몽키 킹’ 같은 세계 초연 작품은 매우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마포아트센터의 상주음악가인 ‘2025 M아티스트’로 선정된 바리톤 박주성이 1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고 있다. (c)마포문화재단

30대 초반에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타고난 성악가가 아니라 ‘노력파’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오페라 ‘카르멘’을 보고 성악가를 꿈꾼 그가 삼수 끝에 대학(연세대)에 들어간 데다 한국에서 콩쿠르 경력도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시절 노래가 너무 좋았지만, 기량이 늘지 않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또 콩쿠르 준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출전 자체를 많이 못 했다”면서도 “하지만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기량이 조금씩 느는 등 성악가로서 꾸준히 성장한 것 같다. 그러다가 2020년 대구국제오페라어워즈에서 빈 국립오페라극장 관계자로부터 ‘영 예술가’ 오디션을 제안받은 것이 전환점이 됐다”고 피력했다.

그는 마포아트센터의 M아티스트로서 오는 23일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8월 야외 공연, 12월 공연 등 무대를 세 차례 선보일 예정이다. 첫 리사이틀 1부에서는 말러와 슈트라우스의 가곡, 2부에서는 모차르트부터 코른골트까지 다양한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또 마포아트센터와 오페라 소재 숏폼 영상을 기획해 오페라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도 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오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정기연주회에서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솔리스트로 출연한다.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박주성은 “상주 아티스트로서 성악의 매력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내 무대를 보고 성악가가 되려는 ‘제2의 박주성’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