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기독교 비결…신학자들은 ‘말씀의 힘’을 꼽았다

입력 2025-04-20 12:10 수정 2025-04-20 19:25
한국개혁신학회 관계자들이 19일 충남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단쳇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개혁신학회 제공

140년 전 한국에 개신교 신앙을 전한 선교사들의 도착일을 즈음해 신학자들의 한국교회 복음의 뿌리를 돌아봤다. 한국개혁신학회(회장 이경직 교수)가 19일 충남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한국선교 14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기조 강연에 나선 김영한 기독학술원 원장은 “한국 기독교가 오늘날 1000만명에 이르는 인구를 가진 종교로 자리 잡은 데는 말씀 중심의 신앙과 복음주의 신학의 동력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역동적으로 만든 것은 ‘사경회’였다”고 꼽았다. 김 박사는 “사경회는 자립·자전·자치로 요약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뒷받침하는 말씀 중심의 제도였다”며 “주일학교·성경학교·가정예배 등 한국교회 전반에 성경 공부가 뿌리내리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말씀에 대한 전적 신뢰가 성장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앙은 사회 전반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백정 출신 박성춘이 관민공동회에서 신분제 철폐를 요구했고 새문안교회에서는 조선 최초의 선거가 장로 선출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한글 성경 보급은 문자 해독률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성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가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선교와 한국교회의 선교’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어드 무어 하디 같은 선교사들은 단순히 교회를 세운 이들이 아니라 복음을 삶 전체로 확장한 사역자들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들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열고 문서를 번역하면서 한국 사회의 구조 자체를 흔들었다”며 “복음을 ‘구원의 메시지’로만 국한하지 않고 교육·위생·신분질서까지 전환하는 생명력 있는 메시지로 전했다”고 강조했다.

강성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는 1903년 원산부흥운동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중요하게 조명했다. 그는 “하디 선교사의 회개에서 비롯한 이 운동은 동료 선교사들과 한국 성도들의 집단적 회개로 이어졌다”며 “그 부흥은 감정적 열광이 아니라 성경 강해와 죄 자복, 말씀 묵상 중심의 사경회에서 비롯됐으며 이후 한국교회를 복음주의 신앙으로 체질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날 학술 대회에서는 김은홍 박사(한인세계선교사지원재단 연구위원), 박찬호 박사(백석신대원), 김한성 박사(아신대) 등이 선교 개혁 과제, 초기 부흥 운동의 도덕 형성, 바르트 신정론 비판 등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경회(査經會)’란?
사경회는 ‘성경을 자세히 조사하고 묵상하는 모임’이라는 뜻으로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부흥운동의 핵심 동력으로 기능했다. 사경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