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푸틴의 ‘부활절 휴전’ 정교회 부활절도 20일?

입력 2025-04-20 10:37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활절을 맞아 우크라이나 전쟁 일시 휴전을 선언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모스크바 현지시간으로) 18시부터 21일 0시까지 ‘부활절 휴전’을 선언한다”고 밝습니다.

정교회 부활절도 20일?
정교회와 개신교·가톨릭교회의 부활절은 역법 때문에 보통 날짜가 다릅니다. 정교회의 종주국을 천명하는 러시아가 이번 휴전을 ‘부활절 휴전’이라고 명명한 데 의문이 남는 이유입니다. 마치 개신교와 가톨릭의 부활절인 20일을 염두에 둔 것같은 발표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첫 실마리는 부활절과 관련해 2025년은 기념할 게 많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부활 절기를 확정했던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입니다. 니케아공의회는 AD 325년 지금의 튀르키예 북서부 이즈니크 호수 인근에 있던 니케아에서 열렸던 회의를 말합니다. 이 회의에서 부활 절기를 확정했죠.

교회사의 첫 공의회에서 교회 공동체는 춘분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뜨고 난 직후 주일을 부활주일로 정했습니다. 또한 부활주일 전 40일 동안 참회와 금욕생활도 하기로 했는데 이게 지금의 사순절로 굳어진 것이죠.

기독교를 공인했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한 니케아공의회에서는 이외에도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했고 ‘니케아 신경’을 제정하는 등 기독교가 종교로 체계를 잡는데 중요한 기틀을 세웠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첫 공의회 이후 교회는 여러 갈래로 분열했습니다.

분열은 서로의 다름으로 이어졌는데 무엇보다 정교회와 가톨릭·개신교의 역법이 달라졌습니다. 정교회는 지금은 사라진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반면 개신교를 비롯한 다른 기독교 전통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선포한 ‘그레고리력’을 씁니다.

정교회가 옛 역법을 사용하는 건 1054년 동서교회 분열의 앙금 때문입니다. 분열 이후 가톨릭 교황이 선포한 달력을 채택하지 않은 것이죠. 이로 인해 부활주일을 비롯해 모든 교회 절기가 다릅니다.

다만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기준으로 춘분이 비슷한 시점에 모이고 보름달 이후 첫 주일이 동일하게 계산되는 해에는 부활절이 겹치기도 합니다. 마치 원래 하나였던 걸 기억하라는 메시지처럼 말이죠. 2001년 이후 2017년까지 모두 여섯 차례 부활절이 겹쳤습니다.

한 날 만난 부활절, “함께 살라”
그런데 올해 전세계 기독교 공동체의 부활절이 한 날 만났습니다. 부활절을 확정했던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갈라졌던 부활절이 20일에 만난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18일부터 나흘동안의 기간을 부활절 휴전으로 명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만 나눠야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전쟁과 재난, 정치적 갈등으로 깊은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선포한 짧은 휴전에 대해서도 ‘정치적 시간벌기’라는 의혹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본래 의미를 되새긴다면 이 순간조차 평화에 대한 갈망이 표현되는 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부활절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회복한 날입니다. 갈라졌던 교회가 하나 되는 상징적인 날이기도 하죠. 분열과 전쟁이 난무하는 시대에 부활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함께 살라”고 명령하는 듯합니다.

올해처럼 모든 교회가 같은 날 부활을 기념하는 해는 자주 찾아오지 않습니다.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이 순간이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분열을 넘어 화해와 회복을 모색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고통의 땅 위에 한 줌의 평화라도 싹틀 수 있길 소망하며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