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 신들의 땅에서 로마족 영혼을 낚는 어부되다

입력 2025-04-20 07:50
조숙희 김수길 그리스 선교사 부부(왼쪽부터)

전 세계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는 빛나는 이름들이 많지만 가장 소외된 이들을 섬긴 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살았다는 올림포스산 아래,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진 작은 교회에서 27년간 ‘집시’로 알려진 로마족을 섬겨온 김수길(68) 조숙희(65)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이들의 선교 여정은 한 편의 서사시처럼 인내와 믿음,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가득하다.

지난달 15일 그리스 카테리니 지역의 ‘카테리니 로마교회’에서 만난 김 선교사 부부는 인터뷰 내내 ‘집시’라는 단어 대신 ‘로마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김 선교사는 “‘집시’는 비어이고 ‘로마’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집시라고 하면 노숙자나 떠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1000여년 전 인도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독특한 종족입니다. 예능에 많은 달란트를 가진 종족이라 노래와 춤을 좋아해요. 스페인이나 동유럽에서는 예능계에서 활동하는 로마족이 많죠.” 그러나 이런 재능에도 불구하고 로마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최근 10여년간 그리스 정부는 로마족에 대한 강력한 정착 정책을 펼쳐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정부 복지 혜택이 제한되기에 요즘은 떠도는 것보다 지역에 거주하는 로마족이 늘고 있다고 김 선교사는 전했다.

김수길 선교사가 현지 아이에게 기도하는 모습

로마족 사역을 시작한 방식은 ‘길거리 학교’였다. 조 선교사는 “처음 로마 마을에 들어갔을 때는 대부분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며 “그래서 가장 쉬운 숫자와 글자를 가르치는 길거리 학교를 시작으로 친구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불결한 위생 상태로 인한 의료 사역, 빈곤으로 인한 급식,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 사역을 번갈아 진행했다. 그 후 그들을 이끌며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숫자가 늘어나면 교회를 개척했다.

27년간의 사역이 순탄했을 리 없다. 김 선교사는 이 사역의 가장 큰 원칙으로 인내를 꼽았다. 김 선교사는 “이 사역의 열쇠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한없는 인내를 요청하는 것”이라며 “중간에 참지 못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고 했다. 이어 “항상 모든 싸움에서 져야 한다. 때로는 자존심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면 로마 종족 전체가 우리의 원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힘든 순간은 현지인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였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기도 가운데 ‘그들을 믿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믿고 여전히 나아가라’고 하셨다고 한다.

김 선교사 부부는 카테리니 마을에서 일어난 긍정적 변화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 현재 이 마을에 30여명 이상의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이것은 사역 초기 때와 비교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조 선교사는 “로마족 여성 10여명이 야간 학교에 다니는데 로마족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복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직업이 없어 생계형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로마족들은 이제 닭 농장과 연계돼 일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로 이전보다 도난율이 현저히 감소한 점도 두드러진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리스는 인구의 98%가 그리스정교회 신자인 종교적으로 폐쇄적인 국가다. 김 선교사는 “외국인 사역자의 현지인 사역이 매우 힘든 곳이다. 비자 문제도 한없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선교사는 아테네에서 난민 사역하는 몇 가정이 전부다.

현지인 리더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조숙희 김수길 그리스 선교사(왼쪽부터)

김 선교사 부부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종족 사역자를 파송해 종족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아테네신학교에서 1년 교육을 마치고 오는 9월 2학년에 편입할 예정인 로마족 지도자가 있다. 또한 선교사 부부가 현재 섬기는 교회는 건축을 앞두고 있으며 그리스 복음주의 교단 정식 교회 가입 절차가 진행 중이다. 두 명의 장로도 선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김 선교사는 로마족을 위해 기도 요청을 했다. “로마족의 견고한 진이 무너져 모든 이들이 회개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고 로마족 다음세대를 예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테살로니키(그리스)=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