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도 트럼프 리스크…에르메스 美 가격 인상, LVMH 현지 생산 확대 검토

입력 2025-04-18 15:39 수정 2025-04-18 15:41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에르메스 매장의 모습. AFP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이 글로벌 명품 산업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에르메스는 미국 시장에서의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고,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미국 내 생산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다음 달 1일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이 지난 2일 부과한 10% 보편관세의 부담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로, 가격 인상은 미국 시장에만 한정된다. 에리크 뒤 알구에 에르메스 재무 담당 부사장은 최근 애널리스트들과의 통화에서 “아직 관세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보수적인 대응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에르메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31억3000만 유로(약 6조6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2% 증가했다. 하지만 직전 분기의 18% 성장과 비교하면 둔화된 수치다. 특히 미국 내 실적은 부진했고 중국 시장에서도 성장세가 주춤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소득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명품 브랜드들조차 무역 긴장 시대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모엣 헤네시 루이비통 회장 겸 CEO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LVMH 모엣 헤네시 루이비통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연설 중이다. 로이터 제공

프랑스 최대 명품 기업 LVMH도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과 유럽 간 관세 협상이 결렬되고, 유럽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된다면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LVMH의 미국 내 생산 능력은 일부 공방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며, 대부분의 제품이 프랑스에서 생산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은 “이미 여러 기업들이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 문제는 기업의 책임이 아닌 유럽연합(EU) 브뤼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정부를 향해서는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보다 현명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LVMH의 연간 전체 매출 중 약 25%는 미국 시장에서 발생하며, 와인과 주류 부문에서는 미국 비중이 34%에 달한다. 이에 따라 유럽산 제품에 20% 이상의 고율 관세가 적용될 경우, LVMH는 패션은 물론 화장품, 주류 부문 전반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 관세가 90일 유예 후 시행되면 유럽산 패션·가죽 제품에는 20%, 스위스산 시계에는 31%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올 들어 LVMH 주가는 36% 하락하며 시가총액이 1000억 유로(약 162조원) 증발했다. 지난 15일에는 부진한 분기 매출로 프랑스 증시 시가총액 1위 자리를 경쟁사인 에르메스에 내주기도 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