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95세 할머니를 구한 40대 경찰관 사연이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18일 전남 보성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읍내파출소에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보성군 보성읍 한 주택에 불이 났으니, 소방관들과 공동으로 대응해달라는 소방당국 요청이었습니다.
박유민(43) 경위 등 경찰관 5명은 황급히 경찰차를 몰아 파출소에서 약 3㎞ 떨어진 화재 현장에 소방관들보다 먼저 도착했다고 합니다.
박 경위는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별채에서 시작한 불이 순식간에 본채로 옮겨붙어 집을 모두 태울 기세였다. 집 앞에 주차된 차량 범퍼가 녹을 정도로 뜨거웠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직 안에 계신다” “할머니를 구해달라”는 가족들의 외침이 박 경위 귓전을 때렸다고 합니다. 한 달 전 다리 수술을 받아 거동하지 못하는 95세 할머니를 화염과 연기 탓에 가족들이 미처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겁니다. 자택 근처 우측 언덕으로 대피한 가족들은 불길이 거세게 솟구치는 모습을 보며 발만 동동 굴렸다고 합니다.
박 경위는 “할머니가 계시다는 방향을 보니 불길·연기도 거셌고, 폭발음까지 들렸다”면서 “‘지금 구하지 못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현장 채증을 멈추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박 경위는 집 바닥에 고인 물에 적신 외투로 얼굴을 가리고는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했습니다. 연기로 꽉 찬 방안에는 의식이 희미한 할머니가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박 경위에게 “움직일 수가 없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박 경위는 “제가 살려드릴게요”라고 말한 후 할머니를 들쳐 안고 황급히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할머니를 업을 시간도 없었다고 하네요.
이 모습을 본 가족들은 박 경위를 껴안으며 “죽은 사람을 살렸다”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재 할머니와 박 경위 모두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다만 박 경위는 할머니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연기를 많이 마셔 병가를 하루 내고 안정을 취하고 있습니다.
박 경위는 “최근 산불로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해 너무 안타까웠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면서 “가족들이 다시 일상으로 웃으면서 돌아가 제 역할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006년 3월부터 경찰 생활을 시작한 박 경위는 동료들로부터 ‘소명 의식’이 강한 경찰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남경찰청은 표창 수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보성군은 감사패를 수여했다고 합니다.
한편 화재는 2시간여 만에 잡혔다고 합니다. 소방당국은 전기적인 요인으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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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