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 함유진. 지난해 LCK 챌린저스 리그(LCK CL) 최고의 정글러였다. 지난 연말 OK 저축은행 브리온에 입단하며 1군 무대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처음으로 치러보는 정규 시즌에 그는 많이 깨지고, 많이 느끼고, 많이 배운다.
OK 저축은행은 17일 KT 롤스터를 잡고 시즌 첫 연승에 성공했다. 정규 시즌 개막 후 첫 세 경기를 전패로 마쳤던 이들은 DN 프릭스에 이어 KT까지 잡으면서 비로소 기세를 탔다. 국민일보는 경기 후 함유진을 만났다. ‘챌체정’에게 첫 LCK는 어떤 곳일까. 짧은 일문일답.
-시즌 개막 후 처음으로 맛보는 연승입니다.
“연승에 성공해서 정말 기뻐요. KT는 제 친정팀이기도 해서 이날 승리가 더 뜻깊고요. ‘불’ 송선규가 잘 다루는 라인전 강한 챔피언들, 칼리스타와 드레이븐 덕분에 밴픽에서 우위를 점하고 들어갔어요. 원했던 구도, 생각했던 구도가 펼쳐져서 게임이 편했습니다.”
-우선 첫 세트를 40분 장기전 끝에 패배하며 출발했어요.
“분명 우리에게 유리한 타이밍이 있었어요. 그런 타이밍에 정글러인 저와 서포터 ‘폴루’ 오동규가 무언가 강력한 액션을 취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게 아쉬웠어요. 게임 종료 후에도 ‘우리가 너무 주눅 든 채로 게임한다’고 피드백했고 2세트부턴 보다 과감하게 플레이하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2세트는 완승을 거뒀습니다.
“조합 완성도에서 우리가 더 앞선다고 생각했어요. OK 저축은행은 요릭·오공·아리·바루스·렐이었고 KT는 아트록스·자이라·탈리야·이즈리얼·레오나였죠. 정글러끼리 초반 정글 캠프를 비우며 성장하는 양상이 되고, 큰 사고 없이 나란히 6레벨을 찍었을 때 제가 게임을 집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오공 대 자이라 구도는 동성장을 하면 오공이 유리하거든요.”
-3세트에선 나피리로 좋은 활약을 했죠.
“밴픽 완성도를 놓고 보면 신 짜오를 먼저 가져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나피리 숙련도에 자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피리로 신 짜오를 상대하겠다고 했어요. 게임 초반 흐름이 좋진 않았어요. 두 번째 유충 전투도 괜히 싸웠다가 결국 손해만 봤고, 드래곤도 2개를 다 챙겨야 했는데 1개밖에 못 가져갔으니까요.
하지만 게임을 후반까지 끌고 가면 5대 5 한타는 절대 안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나피리가 킬을 먹으면서 꾸준히 성장했으니까요. 일단 차근차근 게임을 풀어보려고 했죠. 막판 한타 전까지 이겼다는 확신이 생기진 않았지만, 미드 한타에서 상대 소환사 주문을 모두 소모시켰을 때 승리를 직감했습니다.”
-연패 이후 연승입니다. 첫 승 이후 선수단 분위기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연습실 분위기는 연패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달라진 건 티어 정리에 투자하는 시간의 빈도입니다. 단체로 밴픽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늘렸어요. 원래는 ‘플레이가 우선, 밴픽은 그 다음’이란 주의였는데 바뀌었어요. ‘픽이 예쁘면 플레이도 쉬워진다’로요.
종종 강팀들도 소위 ‘오만한 밴픽’을 했다가 동부권(6~10위권) 팀들한테 덜미를 잡히곤 하잖아요? 반대로 동부권 팀들은 밴픽부터 지고 들어가면 게임이 정말 힘들어지고요. 그만큼 밴픽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밴픽 피드백 시간의 비중을 늘린 뒤로 스크림으로 얻는 것들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LCK CL 최고의 정글러였습니다. LCK 무대는 확실히 다른가요.
“LCK는 제가 한 번 실수하면 그 실수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굴러가네요. 사실 CL은 코인이 많아요. 실수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팀들이 전투 위주로 플레이하죠. 그러니까 싸움을 잘하는 팀이 이기고요.
또 하나 다른 건, LCK 선수들은 절대 스킬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상대가 스킬을 아끼니까, 안 쓰고 있으니까 받는 압박감이 심해요. CL에선 서로 스킬을 맞히려고 들거든요. 그럼 스킬이 빠지는 걸 보고 싸움을 걸어요. 여기는 스킬 맞히기보다 시야 확보와 라인 관리가 우선이더라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본다면요.
“첫 유충 싸움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 서포터가 알리스타고 상대가 렐이라고 가정할게요. 렐이 C자 부시를 먹기 위해 먼저 부시에 Q(파열의 일격)를 써주면 오히려 고맙습니다. 한동안은 스킬이 쿨 타임이니까요. LCK 서포터들은 절대 그러지 않아요. 상대한테 맞는 걸 감수하고 어떻게든 스킬을 안 쓴 채로 부시에 들어가요. 그렇게 부시를 먹은 뒤에 곧바로 Q플로 이니시를 걸죠. 이 장면들의 전환이 정말 빠릅니다. 1초, 1초마다 느껴지는 긴장감의 수준이 달라요.”
-LCK 선수인 함 선수도 이제 이런 플레이를 해야 하겠군요.
“우리도 LCK 팀이고, 저도 이제 LCK 선수니까 그런 플레이를 지향해야죠. 베테랑 정글러·서포터를 보유한 팀들과 붙어보면 경험의 차이를 몸소 체감하게 돼요. 정글러와 서포터만 기량이 탄탄해도 다른 포지션의 신인들을 이끌어줄 수 있겠단 생각까지 들 정도로요. 저와 오동규도 이런 플레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고 공부하지만, 아직은 확실히 베테랑들을 따라할 수 없어요.”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무기입니다.
“네. 보통 ‘짬’이라고 하죠? 그건 그냥 보고 따라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선은 맞으면서 배우고 있어요. 그래도 서부권(1~5위권) 팀들한테 맞아보면 방금 게임으로 제가 어떤 걸 배웠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어요. 그럴 때 재밌죠.
어떤 플레이들은 당해보면 ‘이건 당장은 우리가 배울 수 없는 플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저런 운영을 시도했을 때 결괏값이 똑같을까. 스킬을 쓰는 것도 그렇고, 움직임도 1~2초씩 차이가 나요. 우리는 이렇게 플레이하면 삼거리까지 시야를 뚫을 수 있는데 강팀들은 같은 플레이로 레드 버프까지 시야를 뚫습니다. 먼저 움직이는 3~4초 차이가 결국 타워를 부수고 못 부수고로 이어집니다. 특히 한화생명, ‘피넛’ 한왕호 선수와 붙었을 때 이런 순간을 많이 경험했어요.”
-일단 19일 젠지부터 넘어야 합니다. 리그 전승팀 상대로 연승 도전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아직 OK 저축은행이 젠지란 팀 상대로 운영적으로도, 체급적으로도 부족한 면이 많아요. 그런 만큼 지난번 LCK컵처럼 투박하더라도 교전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게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늘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을 위해서라도 다음 경기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