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or보기]매킬로이와 임성재의 마스터스 성공 키워드는 ‘인내’였다

입력 2025-04-18 06:00
올해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으로 PGA투어 사상 6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로리 매킬로이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흔히들 골프를 ‘인내의 스포츠’라고 한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그 명제가 또 한 번 입증됐다. 다음의 두 가지 사례 때문이다.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걸 웅변적으로 증명한 첫 번째 화자(話者)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다. 그는 골프사에 길이 남을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로 화려하게 막을 내린 올해 마스터스에서 마침내 우승, 진정한 ‘골프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 대회 전까지 PGA투어 통산 28승을 거두고 있던 그였지만 그동안 마스터스와는 지독하리만큼 인연이 없었다. 최고 성적은 2022년 대회 준우승이다. 그렇다고 우승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의 골프 커리어 중 최악의 흑역사로 남은 2011년 대회다. 당시 대회 때 매킬로이는 4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오거스타GC는 그를 우승자로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매킬로이는 후반에 급격한 샷 난조에 빠져 8오버파 80타를 쳐 다잡았던 우승 기회를 날려 버렸다.

그러면서 마스터스는 매킬로이에게 트라우마가 되다시피했다. 2014년에 디오픈을 우승하면서 골프팬들의 관심이 그의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석권) 달성으로 쏠리면 쏠릴수록 매킬로이의 마스터스 울렁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16전17기로 생애 첫 마스터스 우승에 성공했다. 아울러 11차례 도전 끝에 커리어 그랜드슬램 마지막 퍼즐도 완성했다. PGA투어 역사상 6번째다. 그러기까지 지난 14년간(2011년 대회 기준) 매킬로이가 오거스타에 들어설 때마다 감내해야 했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연장전에서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키고 난 뒤 털썩 주저 앉아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오열한 장면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늠되고 남는다.

매킬로이는 자타가 인정하는 ‘포스트 타이거’의 선두 주자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PGA투어 통산 29승째(메이저대회 5승 포함)를 달성했다. PGA투어 현역 선수 중에서는 통산 82승의 우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승수다.

그럼에도 그의 골프 능력에 비하면 승수가 많이 부족하다는 게 다수 골프 전문가들의 견해다. 잘 조절되지 않은 감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우세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선배인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매킬로이와 오찬을 하면서 ‘절제력(discipline)’에 대해 조언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니클라우스의 조언이 약이 됐음이 입증된 장면이 있었다. 1라운드 때다. 그는 14번 홀(파4)까지 4타를 줄여 선두권에 자리했다. 그러나 15번 홀(파5)과 17번 홀(파4)에서 징검다리 더블보기를 범해 결국 이븐파로 라운드를 마쳤다. 당연히 실망이 컸을 것이다. 허나 예전처럼 코스에서 그가 흥분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매킬로이는 우승 직후 당시 심정을 털어 놓았다. 그는 많이 참으려 노력했고, 이번 우승은 온전히 그 인내심이 가져다 준 보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흐름을 잘 바꾼 자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대견스러워했다. 1라운드를 그렇게 마쳤던 매킬로이는 2, 3라운드에서 6타씩을 줄여 우승 발판을 마련했다.

인내와 절제가 매킬로이로 하여금 평생 꿈꿔온 것을 이뤄내게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골프의 역사가 되었고 그 순간을 목도한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오래오래 울림을 줄 것이 분명하다.
올 마스터스에서 공동 5위에 입상해 PGA투어 한국 선수 커리어 상금 순위 1위로 올라 선 임성재. AP연합뉴스

인내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걸 증명한 또 한 명은 한국 남자 골프의 간판 임성재(26·CJ)다. 그는 올해 마스터스에서 공동 5위에 입상했다. 2020년 준우승, 2022년 공동 8위에 이어 통산 3번째 ‘톱10’ 입상이다.

올해 마스터스는 2019년에 PGA투어에 데뷔한 임성재의 192번째 PGA투어 출전 대회였다. 그중 통산 ‘톱10’ 입상은 2승을 포함해 총 48차례나 된다. 이번 대회 공동 5위에 입상하면서 임성재도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79만8000달러(약 11억4000만원)의 상금을 획득, PGA투어 한국 선수 커리어 상금 순위 1위가 됐다.

그동안 이 부문은 임성재의 ‘롤모델’ 최경주(54·SK텔레콤)가 줄곧 1위를 지켰다. PGA투어 통산 8승의 최경주는 통산 498개 대회에서 3214만3009달러(약 457억7807만원)를 획득했다.

그러나 임성재가 이번 대회 공동 5위 상금을 보태 생애 상금액을 3294만1009달러(약 469억2117만 원)로 늘려 역전이 됐다. 커리어 상금 부문 PGA투어 전체 순위는 임성재 40위, 최경주는 41위다. 물론 여기에는 최경주의 시니어투어 획득 상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메이저대회, 그 중에서도 엔트리가 가장 적은 마스터스에서 ‘톱10’에 입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임성재는 2020년에 마스터스 데뷔 이후 올해까지 6차례 출전해 절반인 세 차례가 ‘톱10’이다. 우승하면 금상첨화지만 ‘톱10’ 입상만으로도 후한 평가를 받는 게 마스터스다.

그렇다면 임성재는 왜 오거스타 내셔널GC에만 들어서면 강해지는 걸까. 그가 대회를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 그 해답이 있다. 임성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대회 기간 내내 마인트 컨트롤을 잘한 게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잘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걸 해낸 자신을 칭찬해주는 건 당연하다.

제아무리 돌부처 같은 임성재라 하더라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화가 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는 용케도 잘 참는다. 그런 상황에서 임성재가 여느 선수와 다른 점은 화를 삭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뭔가를 배운다는 점이다.

임성재는 올 마스터스에서는 더더욱 화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대회 같으면 보기를 범하면 화가 나는데 마스터스에서는 외려 보기는 괜찮은 스코어라 생각하게 된다 했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마인드 컨트롤은 말할 것도 없고 감정 조절이 매우 잘돼 가족들 앞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어 기쁘다고 자평했다.

올해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이래저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가르침이 더욱 뼈저리게 실감나는 대회였다. 내년 제90회 마스터스에서는 누가 또 ‘인내’라는 무기로 오거스타 신의 점지를 받게 될 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기다려진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