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잡’ 뛰며 남매 키우던 필리핀 엄마 “그건 기적이었어요”

입력 2025-04-16 19:51
제주 국제순복음교회(박명일 목사)에 출석하는 현마리사(왼쪽 첫 번째) 집사가 지난해 1월, 고향인 필리핀 비콜 지역을 방문해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한 뒤 가족 사진을 찍고 있다. 국제순복음교회 제공

제주 국제순복음교회(박명일 목사)에서 신앙생활 하는 오태훈(62) 장로에게 지난해 1월 필리핀 방문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족과의 즐거운 여행이나 비즈니스 성과를 거둔 출장이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 가슴 깊이 소원하던 일을 이루게 해 준 경험 덕분이다.

오 장로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람의 소원 하나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쁜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지 않겠느냐”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필리핀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건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현마리사(35) 집사와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0년 한국인과 가정을 꾸린 현 집사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제주도에 둥지를 텄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꿈은 허무하게 시들고 말았다. 갑작스레 병원 생활을 시작한 남편, 가장의 부재가 낳은 생계 문제, 쌓여가는 부채까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일상을 짓눌렀다.

두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동네 식당을 돌며 새벽일, 낮일, 저녁일까지 악착 같이 달려들어도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한국으로 시집 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 기대하는 가족들에게 현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고단하고 암흑 같은 10년을 보내던 어느 날 그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사람이 오 장로였다.
오태훈(가운데) 제주 국제순복음교회(박명일 목사) 장로가 지난해 1월 현마리사 집사의 필리핀 집을 함께 방문해 가족들과 만나 복음을 전한 뒤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국제순복음교회 제공

오 장로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교회의 도움을 받아 지혜롭게 재정을 운용하며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게 되면서 현 집사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오 장로는 “5년째 신앙생활하면서 현 집사의 간절한 소망을 듣게 됐는데 바로 고향에 계신 할머니(88)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며 “때마침 현 집사의 여동생이 1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서 바로 준비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오 장로는 교회에서 동역해 오던 장순성 장로와 선교팀을 꾸렸다. 팀원은 단출했다. 두 장로와 현 집사, 현 집사의 두 자녀(11세, 8세)로 구성된 선교팀은 국제선과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고 차량으로 4시간을 달려 필리핀 비콜 지역으로 향했다.

8년여 만에 만난 가족과 눈물겨운 상봉을 한 현 집사는 동생의 결혼식 전날 한 자리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그 동안 겪어온 역경, 신앙을 갖고 사랑과 은혜를 누린 과정을 소개했다. 오 장로는 “현 집사의 이야기에 이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모두들 순한 양처럼 경청했다”며 “예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현 집사의 할머니께서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해드렸는데 감사하게 복음을 받아들이셨다”고 회상했다.

현 집사는 “할머니께서 나이가 많으셔서 하나님께 ‘저만 혼자 천국 갈 수 없으니 할머니께 복음 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달라’고 눈물로 기도해왔다”며 “지난해 할머니께서 예수를 영접한 뒤 9개월 후 돌아가셨는데 천국에서 가족들을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라며 감격을 전했다.
오태훈(오른쪽 두 번째) 장로가 현마리아 집사의 학창시절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 국제순복음교회 제공

현 집사가 학창시절 다녔던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오 장로는 “지난해 필리핀 방문이 국제순복음교회에게 세 가지 특별한 기록을 남겼다”고 했다.

첫 번째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함께 고향 마을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 두 번째는 해외 지역으로 성도 가족 심방을 간 것, 세 번째는 목회자 없이 평신도로만 구성된 소수의 선교팀이 복음을 전하러 해외로 간 것이다.

오 장로는 “다문화사회가 확산되는 지금 평신도들이 외국인 성도와 함께 소그룹으로 고향을 방문해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마리사(오른쪽 세 번째) 집사가 지난해 1월, 고향인 필리핀 비콜 지역을 방문해 가족들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국제순복음교회 제공

현 집사는 “분주하게 생계를 책임지느라 신학 공부를 멈춘 상태인데 나중에 꼭 신학교를 졸업하고 복음의 불모지인 고향에 교회를 세워 필리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소명이자 꿈”이라며 웃었다.

법무부 출입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265만783명이다. 이 중 91일 이상 장기 거주하고 있는 체류외국인은 204만2017명으로 집계가 이뤄진 이래 처음으로 200만명을 돌파했다.

강대흥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은 “국제순복음교회 사례는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다양한 선교 전략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주민 선교를 위해 한국교회가 준비해야 할 세 가지를 제시했다.

“교회가 국내 거주하는 이주민들을 공동체에 초대하고 환대하며 교제를 통해 문화를 교류하는 활동이 선행돼야합니다. 두 번째로는 해외 선교사 파송보다 중요한 게 호텔 공장 농장 식당 등 이주민들이 일상에서 좋은 기독교인을 만날 수 있도록 직장 내 크리스천들을 교육하는 게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이주민들에게 친근한 이웃으로서 관심을 갖고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