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고주리의 비극이 유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아픔을 넘어 희망의 메시지로 되살아났다.
“제 조부이자 제암리 학살사건의 순국선열인 고 안봉순씨는 제암리교회 성도였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3·1운동을 앞장섰던 분입니다.”
16일 고 안봉순씨의 손자 안소헌(81)씨는 국민일보에 조부를 이같이 소개했다. 손자 안씨는 “조부께서는 서양 선교사들과 가깝게 지내셨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도 주동적으로 만세를 부르시는 등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셨다”며 “일본 헌병대는 이런 조부와 제암리 주민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제암교회에 이들을 집합시켰다”고 말했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헌병대는 제암리 주민들을 당시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시)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이후 인근 마을인 고주리로 넘어가 학살을 이어갔다. 학살로 희생된 주민은 총 29명. 모두 제암리와 고주리의 독립운동가였다.
제암리·고주리에서 벌어진 일제의 만행은 해외 선교사의 노력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W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는 사건 사흘 뒤인 18일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캐나다 선교부에 보고했다. 스코필드가 작성한 ‘제암리 학살 보고서’에는 “과부와 고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들렸다”는 구체적인 장면 묘사도 담겼다.
100여년 전 이 아픔을 기억하고 희망을 다짐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15일 화성시는 경기도 화성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에서 ‘기억을 넘어 평화로, 희생을 넘어 희망으로’라는 주제로 제106주년 제암리·고주리 학살 추모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병천 제암교회 장로가 제암리 사건 추모 사업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시장상)을 받으며, 최용 제암교회 목사와 정명근 화성특례시장 등이 참석했다.
정 시장은 “선조들은 청년과 어르신,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나이와 종교를 초월해 독립을 위해 한뜻을 모았다”며 “오늘의 우리는 역사적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직접 들리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역사의 증인이 돼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