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에서 할머니는 또 당부했다. 밥숟가락 놓자마자 텃밭에 나와 부추밭 밟아라. 할머니는 씨 뿌려놓고 싹이 돋아나길 기다리다가 가녀린 줄기가 주~욱 뻗어 오르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매정하게 배어내곤 했다.
영남지방에서는 부부의 정을 오래오래 유지해 준다 하여 그 이름을 ‘정구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 유래에서인지 봄 부추 한 줄기는 피 한 방울보다 낫다는 말이 있고, 만일 장복한다면 소변 줄기가 벽을 뚫는다 하여 ‘파벽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니 알고 보면 우리 몸에 유익한 보신제가 모두 땅에서 돋아나며 진정한 보약은 자연 속에 묻혀있어 우리의 땀과 수고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부추는 인삼 녹용보다 좋으니라”하시며 남새밭이 우리 집 놀이터가 되게 해 주신 할머니의 모습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화병 난 사람도 우리 집 부추밭에 와서 화를 털고 가라던 할머니의 덕담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장난기 많던 오빠들은 내 몸 가벼운 걸 알면서도 “너는 부추가 안쓰러워 쓰다듬는구나”라며 나를 업어주곤 했다.
수차례 잘려 몽땅 머리가 돼 버린 정구 밭, 동절기를 위해 왕겨를 뿌려주고 볏짚을 풀어 이불 대신 덮어주고는 한겨울을 지낸다. 한설이 지나고 이른 봄이면 볏짚을 걷어낸다. 늦가을에 밟히고 뭉개져 다시 살아날까.
걱정했던 부추는 오밀조밀 노~오란 연녹색 새순이 돋아 오른다. 가을 내내 짓이겨 놓았던 것들이 긴 겨울을 이기고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이다. 고난이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듯이, 저들의 아픔과 고통은 오히려 떡잎을 만들어낸다. 튼실하게 자라난 부추가 향긋한 봄철음식으로 온 가족의 보양식이 되어 준 것은 매서운 비바람과 눈보라와 된서리를 늠름하게 잘 이겨 내주었기 때문이다.
어찌 푸성귀뿐이겠는가! 봄이면 싹틔워 오를 수만 가지 기화요초, 이 땅의 구석구석을 아름다운 전시장으로 장식해줄 고마운 열매들이 가득한 산과 들을 상상해 본다. 고요히 내리는 봄비, 공기 바람 햇빛, 값없이 받아 누리는 은혜에 대하여 우리를 도우시는 신의 손길은 참으로 신비하다.
<꽃은 사랑이다>
김국애
꽃이 말할 수 있다면
사람과 눈 맞춤하며
애틋한 춤사위 드러낸다면…
꽃밭은 축제장이 되겠지
사람들은 긴장하겠지
나는 어떤 향기의 꽃일까?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오월의 여왕 장미꽃처럼 피어
행복 바이러스가 될 수는 없을까?
원죄도 본죄도 없는 꽃씨,
거름더미에서도
쓰레기더미에서도
그윽한 향기의 꽃으로 피어나는
거룩한 유전자와 염색체의 진실
아무나 꽃이 되겠느냐
나도 꽃처럼 살고 싶다
하나님 사랑이 가득한 꽃밭
심오한 향기의 기화요초
꽃밭에는 어머니가 있고
사랑하는 임의 속삭임과
그리운 친구가 있다
꽃망울마다 맺혀있는 그리움
만개하던 꽃잎이 시들고 말라
속절없이 떨어져 죽고 다시 죽어도
다시 꽃으로 살아나는 진실
순결을 지키는 비장한 결단이겠지
꽃은 천국의 매신저다
아무나 꽃이 되겠느냐
나도 꽃처럼 살고 싶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