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권 없다면 혼란”…‘한덕수 재판관 지명’ 효력 정지

입력 2025-04-16 18:16 수정 2025-04-16 21:37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효력을 16일 정지했다.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판관 지명·임명권이 있는지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명 절차를 진행하면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몫 재판관’ 임명은 6·3 조기 대선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헌재는 법무법인 도담 김정환 변호사가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행위에 대해 낸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날 인용했다.

헌재는 김 변호사가 제기한 사건을 지난 9일 접수하고 무작위 전자 추첨을 통해 마은혁 재판관을 주심으로 선정한 뒤 11일 정식 심판에 회부했다. 이후 15~16일 평의를 열고 사건을 논의해왔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한 권한대행이 지난 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행위 효력은 일시적으로 정지된다. 정지 기한은 김 변호사가 낸 ‘재판관 임명권 행사 위헌확인’ 헌법소원 선고 시까지다.

헌재는 한 권한대행이 지명에 잇따르는 인사청문요청안 제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송부 요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등 일체의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재는 가처분과 헌법소원 본안 결정 결론에 따라 발생할 불이익을 비교한 후 설령 본안 헌법소원이 기각되더라도 가처분을 받아들여 지명 행위 효력을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헌재는 “가처분을 기각할 경우 이 사건 후보자에 대한 임명 절차가 그대로 진행돼 피신청인이 이 사건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게 될 것”이라며 “(한 권한대행에게) 임명할 권한이 없다면 피신청인 임명 행위로 인해 신청인만이 아니라 계속 중인 헌법재판 사건 모든 당사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또 “가처분이 기각됐다가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인용될 경우 이 사건 후보자(이완규·함상훈)가 재판관으로서 관여한 헌재 결정 등 효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헌재 심판 기능 등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본안심리 결과 한 권한대행에게 임명권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두 후보자가 관여한 재판에 대한 재심이 크게 늘어나는 등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재심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부적격 재판관’에 의한 결정이 효력을 갖는 셈이 돼 헌법재판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재는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됐을 때 발생할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됐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말했다.

헌재는 “후보자 발표만 했을 뿐 지명·임명한 것은 아니므로 각하돼야 한다”는 한 권한대행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결정에 따라 헌재는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오는 18일 퇴임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심리를 서둘러 본안 헌법소원 사건 결정을 선고하거나 새 대통령이 취임해 후보자를 다시 지명할 때까지는 현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무총리실은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본안의 종국 결정 선고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에게 “국민에게 사죄하라”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헌재 판결 직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을 권한대행이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다”며 “지금 당장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말했다.

조 수석대변인은 그러면서 “헌법재판관 지명 문제는 본안 판단까지 갈 사안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헌재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당한 권한 행사조차 정치적 해석에 따라 제약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 것”이라며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을 위임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헌법상 주체이며, 재판관 지명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수석대변인은 “헌법기관 구성은 국정 안정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그럼에도 권한 행사를 제약한 것은 향후 국가 비상 상황에서 헌정 질서에 심각한 혼란과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