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원 “첼로와 함께한 50년, 마라톤 연주로 기념해요”

입력 2025-04-16 05:00
올해 첼로 인생 50년이 된 양성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에코 오브 엘레지’ 앨범 발매 및 공연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5년 3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헝가리 태생 미국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1924~2013)의 내한 콘서트. 당시 피아노를 배우고 있던 7세 소년 양성원은 세계적인 거장 슈타커의 공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며칠 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슈타커가 일곱 살 때 첼로를 시작했다”는 해설자의 말에 자신도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양성원은 불과 2년 만에 연주회를 열며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슈타커의 지도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친 뒤 첼리스트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 양성원(58)이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50년 전 첼로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슈타커 선생님은 내게 ‘아이돌’ 같은 존재다. 선생님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19살 때 인디애나 음대에서 선생님의 제자가 된 것은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올해 첼로 인생 50년이 된 양성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에코 오브 엘레지’ 앨범 발매 및 공연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니버설뮤직

양성원이 지난 2000년 EMI에서 발매한 데뷔 앨범은 헝가리 작곡가 졸탄 코다이(1882∼1967)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담았다. 코다이를 세계 클래식계에 알린 인물이 슈타커라는 점에서 스승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세계적인 음반 전문지 ‘그라모폰’의 ‘이달의 에디터스 초이스(편집자 선택)’와 ‘올해의 크리틱스 초이스(평론가 선택)’에 선정될 만큼 호평받았다. 양성원은 “선생님은 당시 내가 코다이를 선택한 걸 매우 좋아하셨다. 그리고 위험 부담이 크다고 걱정했던 데뷔 앨범이 오히려 좋은 성과를 냈다”며 웃었다.

양성원이 올해 첼로와 함께한 50년을 기념해 데카(DECCA) 레이블에서 새 앨범 ‘에코 오브 엘레지’를 발매했다. 앨범에는 명곡 ‘사랑의 인사’로 유명한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1857~1934)의 첼로 협주곡과 피아노 오중주가 수록됐다. 첼로 협주곡은 엘가가 1919년 본인 지휘로 초연했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업해 의미를 더했다. 그리고 피아노 오중주는 피아니스트 박재홍,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과 임지영, 비올리스트 김상진 등 한국 클래식계를 이끄는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했다. 양성원은 “엘가가 첼로를 위해 작곡한 걸작 2곡을 함께 담은 드문 앨범”이라며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애도를 담은 첼로 협주곡은 내 음악 여정에서 늘 함께한 작품이고, 피아노 오중주는 엘가가 세상을 떠날 때 들려달라고 했을 정도로 내면의 성찰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첼리스트 양성원(오른쪽)이 피아니스트 박재홍,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과 임지영,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함께 엘가의 피아노 오중주를 연주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

그는 오는 5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앨범 발매와 첼로 인생 5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공연도 연다. 윌슨 응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함께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엘가의 첼로 협주곡,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선보인다. 한 번에 연주하기 어려운 대작 3곡을 연달아 선보인다는 의미로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차라리 그냥 마라톤을 뛸 걸 그랬다”고 웃으면서 “이날 공연은 첼로 인생 50년에 함께 해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준비했다”고 말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첼리스트이자 한국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와 프랑스 본 베토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그리고 트리오 오원의 리더인 그는 음악가의 행보를 지치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또한, 연세대 음대 교수와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 객원교수로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바쁘게 살아온 첼로 인생 50년 동안 위기는 없었을까. 그는 “첼로를 그만두려고 했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파리음악원의 치열한 경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다른 직업을 가져볼까 고민했다. 그리고 인디애나음대 시절 콘서트홀을 오가는 연주자 대신 자연과 가깝게 사는 삶을 생각했었다”면서 “하지만 두 번 다 오래 못 가 첼로 케이스를 다시 열었다. 무엇보다 훌륭한 연주가 주는 감동이 첼로를 계속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인류의 유산인 클래식 음악을 잘 전달하는 것이 연주자인 내 역할이다. 그리고 교육자로서 다음 세대들이 음악가라는 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