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고난 주간과 부활절에

입력 2025-04-14 14:58 수정 2025-04-14 15:23

고난 주간과 부활절을 앞두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첫째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말에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합니다. 좋게 말하면 자존심, 자존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면 교만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 보면 다 교만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교만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육신을 말하면 내놓을 것이 많았습니다. 신분적인 면이나 학문적인 면 심지어 신앙적인 면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이에 반하는 사람은 적대시하고 무시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단시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난 다음, 그는 완전히 변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자리에 이르게 됐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나를 내세우는 것은 예수님을 정말 만나지 못해서 그럽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네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삶은 육신의 삶, 정욕의 삶이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육신의 것이 계속 살아납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내면적 심각한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나는 매일 죽노라”고 했습니다.

“네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우리가 매일 죽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 제발 이 쓴 잔을 면케 해주세요”라고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실 때 천군 천사가 수종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주님의 삶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말이 아니라 생활로 나타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과거의 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어부 생활하던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 속 어떤 젊은 법관은 영원을 사모하는 고귀한 인성을 가졌고 율법을 준수하는 훌륭한 인격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있는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할 때 그 법관은 재물이 많아 고민 끝에 떠나갔고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내게 있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