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상과는 다른, 교회의 성숙함을 보여줄 때”

입력 2025-04-14 13:11 수정 2025-04-14 16:34
유진소 호산나교회 목사는 극단적으로 갈린 정치 상황에 관해 “사안을 선악의 구도로 바라보지 말아야 하며, 한국교회는 사회 통합을 선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유 목사가 부산 강서구의 교회 목양실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 국민일보DB

유진소(64) 부산 호산나교회 목사는 대통령 탄핵 정국에 접어들며 한국교회가 세상과 똑같은 모습, 즉 중재자의 역할보다는 반목에 앞장서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건 “정말 너무 큰 실수였다”고 평가했다. “세상과 똑같은 소리를 교회가 내면 교회는 더는 교회가 아니”라는 일갈이다.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고 한국사회의 미래는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유 목사는 최근 가진 국민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이제는 한국교회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목사는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차분히 앞으로의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질서를 잡아나가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며 “반목하고 갈등만 하면 결국 이 나라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한 나라를 같이, 주의 뜻 가운데 이뤄 나가야 한다는 본질적인 부분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헌재의 대통령 파면 판결 어떻게 보셨나
“개인적인 의견을 떠나 대통령이 파면됐다는 점 자체는 그것이 타당하든 아니든 우리 민족에 정말 아픈 ‘대미지’(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권위가 무너지면서 질서도 덩달아 무너진 이 현실은 모든 공동체가 피해를 봤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번 탄핵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개인적인 견해차가 있겠지만, 한국의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는 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옳고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했으니까. 더 중요한 건 이후에 벌어지는 사회 갈등을 한국교회가 봉합하고 하나 돼 나가는 일의 중심에 서야 한다. ‘악법도 법이다’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처럼, 이 나라의 시스템을 파괴해버리면 결국 우리는 이 나라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탄핵 정국에 돌입하며 한국교회를 향한 세간의 인식이 더 악화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사회에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교회의 사회 속 역할은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회는 그 본질에서 벗어나 너무 세부적인 사안에 매몰돼 사회 혼란에 그 어떤 역할도 못 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주의 뜻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뤄 나가야 한다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원래의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면 결국 이 나라는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회의 방향과 질서를 잡아가는 역할을, 진짜 교회 역할을 이제는 해야 할 때이다.”

-격앙되고 극단으로 양분된 현 사회를 향한 조언이 있다면
“현재 탄핵 이후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감정적으로 격앙돼 서로를 비난하고 대치하는 상황이다. 교회는 이 상황에 관한 판단과 상대에 대한 비난은 잠시 멈추고 이를 역사에 맡겨두고, 앞으로의 질서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이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오히려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방향으로 교회가 길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에서 떠나 신앙인이라는 본질 위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사람들의 소리보다 차분히 상황을 바라보고 더욱더 근원적인 부분에 집중하자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을 얻게 해야 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갈수록 분열하고, 서로를 향해 비난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어떤 신앙을 지녀야 한다고 말씀하시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당시 상황이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비슷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정확하게 십자가의 길로서 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 죄의 문제를 먼저 풀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같은 의미로 지금 한국교회에도 죄라는 십자가를 먼저 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정치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은 어때야 할까
“한국교회가 이번에 가장 실수한 것은 세상과 너무 똑같았다는 거다. 교회가 세상하고 똑같은 소리를 내면 교회는 그저 세상의 집단 중 하나일 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세상과는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간다는 좀 더 근본적인 가치관에서 정치를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그리고 중보자로서 세속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반대편 사람들과 그 관점을 적으로 간주해 그것을 이겨내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신앙관에 있어서 악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의견을 인정하는 보다 더 영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설교 강단에 선 목회자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
“정말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목회자인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야 한다.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말이 아니라 긍정적인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한 단계 더 높은, 하나님의 뜻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자칫 현실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고 얘기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분명한 건 한국사회의 현 문제는 우리 민족 내의 이야기라는이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 내에서의 싸움이다. 그랬을 때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면 결국은 자기 신체를 잘라내야 한다는 뜻밖에 안 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에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이제는 한국교회가 정말 진리 위에 서 있구나’, ‘교회가 더 성숙한 공동체로서 영향력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마음을 심어줘야 할 기회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가진 영향력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