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너무 다른 사회통념

입력 2025-04-13 18:32

이모씨는 버스운전사였다. 전북 완주와 서울을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몰았다. 11년 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전주에서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승객은 성인 4명이었다. 당시는 요금을 현금으로 받을 때여서 승객 1인당 1만1600원씩, 총 4만6400원을 받았다. 당일 운행을 마친 후, 이씨는 운행일지에 학생요금 1만1000원씩을 받은 것으로 기재하고 버스회사에는 4만4000원만 납부했다. 2400원을 소위 ‘삥땅’을 친 것이다.

이 일로 이씨는 17년 동안 일했던 버스회사에서 해고됐다. 버스회사가 그즈음 3회에 걸쳐 800원을 횡령한 다른 운전기사에게 정직 처분을 한 전례에 비춰보면 과한 처분이었다. 이에 이씨가 법원에 버스회사의 해고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입사하고 17년 동안 승차요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다른 사유로 징계받은 적도 없다는 점이 참작됐다. 또한, 횡령 금액이 미미하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건에서 다른 운전기사가 정직 처분을 받은 데 비해, 이씨에게 해고 처분을 내리는 것은 징계의 형평성에도 반한다고 봤다. 따라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달랐다. ‘승차요금 2400원을 버스회사에 입금하지 않은 것은 착오가 아니라 고의이고, 단체협약 등에서 해고 사유로 정하고 있는 운송수입금의 착복에 해당한다’면서 ‘승차요금은 버스회사의 절대적 수입원이고 요금 특성상 횡령 규모가 소액일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하면 횡령액과 상관없이 신뢰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보고,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사회통념’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사회통념’은 일반적으로 ‘사회일반에 널리 퍼져있는 공통된 사고방식’ 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관념’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일반인의 ‘상식’인 것이다. 이런 의미의 ‘사회통념’으로 판단했을 텐데, 결과는 정반대다. 혹시 우리 일반인이 모르지만, 법관만 아는 ‘사회통념’이라도 있는 걸까. 대법원도 별다른 고민 없이(?)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요즘 버스회사가 이씨를 해고한 것이 ‘사회통념’상 정당하다고 판단한 판사가 헌법재판관에 지명돼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실력 있고 운까지 좋아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과 다른 ‘사회통념’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보통사람이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재판이 진행된 약 10년 동안 실낱같은 복직에 대한 희망을 품고 막노동을 하며 다섯 식구를 부양해야 했던 이씨처럼.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