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 전환에 트럼프 훈풍까지…호황 볕 드는 중형조선사

입력 2025-04-14 05:00
국민일보 DB

중국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조선업 호황 국면에서도 소외됐던 중형 조선사들이 반전의 분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원가 부담 완화 등으로 흑자 전환을 달성한 데 이어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중국 선박 규제에 따른 반사 이익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조선업의 재건을 도모하고 중국의 해양 패권을 저지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조선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반경쟁적인 활동을 조사하고, 이를 바로잡을 조치를 마련해 정부에 보고할 것으로 지시한다. USTR은 이미 지난 2월 중국 국적 선주·비중국 선주의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만에 들어올 때 입항료를 부과한다는 조처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한국 조선업계는 대형 조선사들의 차별성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암모니아 운반선 등 고부가 선종 위주로 수주했다.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중국 선박 배제 전략을 추진하면서 향후 중형 조선사들이 주력하는 중저가 범용 선박으로 수주 영역이 확대될 전망이다. 탱커선(유조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시장은 기술 격차가 크지 않아 10~20%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중국으로 발주가 몰려왔는데, 입항 수수료로 중국 조선사들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면 국내 중형조선소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선사들이 중국을 대상으로 한 발주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흐름이 감지된다. HD현대의 조선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일 약 2600억원 규모의 탱커선 2척 건조 계약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HD현대삼호가 건조를 맡는다.

미국 ‘에너지 공룡’ 엑손모빌은 최근 중국 조선소에 건조를 맡겼던 액화천연가스벙커링선(LNGBV) 신조 계약을 보류했다. USTR의 중국 조선업 제재 언급 이후 처음으로 나온 미국 기업의 중국 조선소와의 계약 취소 사례다. 엑손모빌은 중국이 아닌 곳에서 LNGBV를 건조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중형 선박 제조사들은 호황기를 맞이한 대형 조선사들과 달리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중형 선박 업체가 생산하는 중·소형 탱커선,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 시장에선 중국 업체가 수주를 싹쓸이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은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72%, 벌크선 시장에서 69%, 탱커선 시장에서 68%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분위기가 반전됐다. 총 길이 100~300m 크기의 중형 선박 교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제품 가격이 상승했고 중국산 후판 수입 증가로 원재료 부담까지 줄면서 중형 선박 업체들의 수익성 개선이 가시화했다. 대한조선, 케이조선, HJ중공업 등 주요 중형조선사들은 지난해 일제히 흑자로 전환했다.

강경태·남채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미국 정부가 중국산 선박에 입항료를 부과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는 (한국이) 저선가 선종을 다량 수주할 기회로 증설은 필수”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