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아펜젤러가 되어 주세요” 선교사 후손의 방한 메시지

입력 2025-04-13 14:29 수정 2025-04-13 16:58
아펜젤러 5대 후손인 매튜 셰필드(왼쪽)와 로버트 셰필드 형제

140년 전 미지의 땅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의 용기와 헌신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의 근간이 됐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5대손인 매튜 셰필드(33)와 로버트 셰필드(24) 형제가 최근 한국선교 140주년을 맞아 특별 방문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사역지를 직접 밟은 이들의 방문은 단순한 가족사적 의미를 넘어, 신앙과 용기, 그리고 섬김의 가치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 4월 조선에 입국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첫 선교사’다. 한국 기독교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조선 입국으로 시작돼 그가 내딛는 걸음이 모두 처음으로 기록됐다.

13일 경기도 안산 꿈의교회(김학중 목사)에서 만난 두 후손은 “낯선 땅인데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라며 깊은 감회를 전했다. 매튜는 변호사로 정책 자문 관련 일을 하고 있으며 로버트는 심리학 관련 일을 꿈꾸는 청년이다.

매튜는 “낯선 땅인데 집에 온 기분”이라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도 처음 방문했는데 이상하게도 집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아펜젤러 선교사의 정신이 제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로버트는 “고조 할아버지의 사역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감정은 한 마디로 경외감”이라며 “모든 곳에서 그분의 헌신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실을 목격했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2일 입국해 열흘간 아펜젤러가 한국에서 사역한 발자취들을 밟았다. 배재고등학교부터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등을 방문했다. 두 후손이 방문한 장소들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 근대화와 교육,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의 현장이었다.

아펜젤러 후손들은 미지의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닌, 신앙과 용기의 서사였다. 매튜는 “유치원생인 5~6살 때부터 고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어도 모르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에 복음을 전하러 떠난 그분의 용기는 어린 저에게도 큰 감동이었다”고 회고했다.

로버트는 자신의 가계도를 설명하며 아펜젤러와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했다. 그는 “저희는 아펜젤러의 외손이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들에게는 딸만 있었고, 그 딸이 저희 할머니의 어머니가 됐다. 가족들이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지만, 모일 때마다 아펜젤러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가족들이 아펜젤러와 관련한 조그마한 유품도 함께 보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손들은 이번 방문으로 한국교회에서 아펜젤러 선교사가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감동받았다고 한다. 로버트는 “그분의 업적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와서 보니 그 영향력의 깊이와 넓이에 새삼 놀랐다”며 “한국교회와 사회가 이렇게 그분의 업적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모습에 새삼 놀랐다”고 전했다.

아펜젤러 5대손인 매튜 셰필드와 로버트 셰필드 형제, 기감 KMC 김정수 사장, 황병배 기감 총무

매튜도 “한국에 오기 전에도 고조 할아버지가 중요한 일을 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결실을 보니 의미가 더욱 실감난다”며 “그분이 뿌린 씨앗이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고 했다.

두 사람의 눈에 비친 한국은 고조 할아버지의 헌신이 만들어낸 기적의 현장이었다. 배재고등학교를 방문한 경험을 떠올린 로버트는 “‘나라를 위해 좋은 리더를 키우라’는 학교 모토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비전이 담긴 말씀으로 한국교회가 그 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 시대의 아펜젤러가 되어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매튜는 “아펜젤러의 5대손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펜젤러는 무엇보다 용감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용기와 담대함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인터뷰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개인적 비전을 물었다.

매튜는 “현재 변호사로서 특히 환경 보존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버트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서 섬김의 삶을 살았듯이 저도 그 정신을 이어 섬김의 삶을 살고 싶다”며 “심리학자, 상담가로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 아펜젤러의 정신은 결국 봉사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안산=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