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한정석(42), 작곡가 이선영(42), 연출가 박소영(44).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2013년), ‘레드북’(2018년), ‘쇼맨’(2022년)으로 3연타석 홈런을 날린 이들은 공연계에서 ‘한이박 트리오’로 불린다. 2007년 ‘불과 얼음’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에서 만난 이들은 20년 가까운 친분 속에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의 네 번째 작품인 신작 ‘라이카’(~5월 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로 돌아온 이들을 최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만났다.
“‘라이카’는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더 나은 인간이 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박소영)
뮤지컬 ‘라이카’는 냉전 시대였던 1957년 소련이 우주에서 생물체의 생존과 적응 여부 테스트를 위해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보낸 개의 실화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는 인공위성의 내열 시스템 오작동으로 5시간 만에 죽었다. 하지만 이 실험을 통해 생명체가 지구 궤도에 올라가 무중력 상태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입증됐다. 이번 작품 속에서 라이카는 죽지 않고 우주로 날아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B612 행성에 간다. 이곳에서 인간과 닮은 존재가 된 라이카는 어른이 된 어린 왕자, 장미, 바오밥 나무 등을 만나며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대학 시절 라이카의 일화를 처음 알게 됐는데요. 라이카를 기리는 동상 등 예술작품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뮤지컬의 소재로 늘 머릿속에 있다가 ‘라이카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상상에서 대본을 쓰게 됐습니다. 그리고 라이카가 우주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린 왕자를 떠올렸습니다.”(한정석)
“정석 씨의 작품은 늘 우리가 고민해 볼만한 소재로 대본을 씁니다. 늘 결론을 도출하는 건 아니지만 두세 달 건 온전히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이번엔 같은 인간은 물론 동물 등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와 소통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박소영)
작품의 주인공 라이카는 자신을 사랑으로 돌봤던 소련 항공의학연구소 소속 연구원 캐롤라인과의 재회를 위해 지구로의 귀환을 꿈꾼다. 하지만 인간을 혐오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지구를 부숴버리려는 계획을 세운 어린 왕자는 그런 라이카를 만류한다. 어린 왕자는 극 중에서 생텍쥐페리가 탄 비행기가 독일군에게 격추되는 것을 보며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흑화’됐다. 그런데, ‘라이카’ 개막 이후 관객의 후기를 보면 어린 왕자가 흑화된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꽤 보인다.
한 작가는 “어린 왕자가 우주에서 지구를 계속 봤을 때 인류의 행태를 과연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전사를 알고 인간에 환멸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흑화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맡은 이선영 작곡가도 “한 작가와 오래전부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던 어린 왕자가 성장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알고 흑화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의 무대는 실제 우주를 표현하는 대신 ‘어른 동화’의 콘셉트에 맞춰 만화적이고 키치스럽다. 음악의 경우 다채로운 장르의 넘버들이 많은데, 우주를 배경으로 하되 인간다움을 강조한 작품이라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이 작곡가는 “작품의 외형은 SF 장르지만 그 안은 휴먼 드라마다. 그래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에 맞춰 음악을 분리하려고 했다. B612처럼 판타지적 공간에서는 신디사이저를 많이 활용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와 장미. 바오밥 나무 등의 장면에선 원시적인 느낌을 냈다. 머나먼 우주에 있는 존재들이니만큼 음악을 통해 지구와 다른 분위기가 그려지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 연출가와 이 작곡가는 장우성 작가와 2017년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조명하기 위해 ‘목소리 프로젝트’를 결성했다. 전태일 열사를 다룬 음악극 ‘태일’(2018), 과거 소록도 한센인과 간호사, 그리고 현재 발달장애 아동 가족의 이야기를 연결한 ‘섬: 1933~2019’(2019),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을 그린 ‘백인당 태영’(2023)를 발표했다. 오는 5월 14일~7월 20일 대학로 TOM(티오엠)에서 ‘태일’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