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품은 서양의사 드류 선교사…새로운 역사자료 ‘햇빛’

입력 2025-04-11 11:30 수정 2025-04-12 11:03
드류 선교사의 미 남장로회 임명장. 최은수 교수 제공

“미국 장로교 선교부 집행위원회에 의해 정식으로 ‘선교사(Missionary)’로 임명됐음을 확인한다. 그는 해외 선교의 소명을 받아 ‘조선(Korea)’에서 봉사하게 됐고, 이 지역은 그의 ‘사역지(Field)’로 지정됐다.”

1893년 4월 10일 알렉산드로 드류(한국명 유대모·1859~1926) 선교사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임명장을 받았다. 미국 남장로교의 명을 받은 그는 이듬해 3월 아내 루스 드류와 함께 조선 땅을 밟게 된다.

드류 선교사의 선교 활동상이 담긴 역사자료들이 새롭게 발굴·공개됐다. 미 남장로교 소속 내한선교사의 임명장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도 공개된 자료에는 1894년 주한 미 영사관으로부터 발급받은 공식 등록증과 임피군수(현 군산)의 공문서, 드류 선교사의 생활품 등이 있다.

드류 선교사는 1893년 앞서 파송된 남장로교 7인 선교사 중 한 명인 윌리엄 맥클리어리 전킨(한국명 전위렴·1865~1908)과 함께 호남지역 선교에 헌신했다.

미 남장로교 첫 의료선교사로 알려진 드류 선교사는 의료선교를 통해 단순 치료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선진 기술과 치료법을 전하며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박애 정신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된다. 군산에 자리 잡았던 1896년부터 2년간 4000여명을 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류 선교사는 1901년 건강 악화로 미국 캘리포니아로 안식년 휴가를 떠났다. 한국에서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드류 선교사는 이민 한인을 돕는 등 해외에서도 조선에 각별한 사랑을 보냈다. 도산 안창호의 대한국민회 사역을 도운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황혼을 보내던 그는 1926년 향년 67세로 오클랜드에서 별세했다.

드류(왼쪽 첫 번째) 선교사 부부의 모습. 최은수 교수 제공

공개된 자료에는 입국 직후 드류 선교사의 일면도 있다. 그는 1894년 당시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1867~1951) 선교사와 6주간 조선 답사에 나섰다. 답사는 수도권을 비롯해 호남 서해안 대부분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이었다. 레이놀즈 선교사가 가족들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에는 드류 선교사와의 일면과 함께 조선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겼다.

“우리는 방금 지방(내륙) 지역을 다녀온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교회들과 학교들을 방문하면서 매우 좋은 시간을 보냈고, 그곳들이 아주 좋은 상태임을 확인하게 돼 기뻤습니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이 그림엽서를 보냅니다. 이 그림은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오는 한국의 겨울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즐거운 성탄절과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레이놀즈 선교사의 편지. 최은수 교수 제공

이번 자료를 공개한 최은수 버클리GTU 객원교수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료들은 수년 내로 전라도에 있는 박물관에 안치할 계획”이라며 “현재 출판 과정에 있는 저서 ‘최초의 서양의사 드류 유대모’를 통해서도 자료를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별 종류별로 계수하면 가지고 있는 항목의 수가 수백 가지는 더 된다. 모두 실물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기독교인의 역사적 사명인 ‘기억’의 역할을 다해 현세대와 다음세대에게 자랑스러운 긍지이자 자부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