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이라는 디지털 블랙홀이 게임 이용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코로나 이후 벌어진 디지털 여가의 판도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급격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게임 이용시간과 숏폼 이용시간의 상반된 추이다. 하나는 줄고, 다른 하나는 폭증하는 현상이 왜 나타났을까.
분명한 사실은 지난 3년간 숏폼 콘텐츠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틱톡의 글로벌 월평균 사용시간은 2020년 13시간에서 2022년 23시간으로 76.7% 급증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같은 기간 게임 이용률이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두 현상의 연결점이 뚜렷하다.
차이점은 '즐거움을 얻는 방법'에 있다. 게임은 퀘스트를 수행하고 미션을 클리어하는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 반면 숏폼은 손가락으로 쓱쓱 넘기며 손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큰 즐거움을 얻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Z세대 이용자들이 숏폼에 하루 평균 95분을 쏟아붓는 이유다.
숏폼은 시간 소비 측면에서도 게임보다 유리하다. 게임은 대개 '한 판' 단위로 진행되고 연속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숏폼은 15초, 1분으로 쪼개어 언제든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 틈날 때마다 짧게 즐기기에 최적화된 형태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숏폼 소비 습관이 게임 플레이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요즘 어린 세대들은 게임 튜토리얼조차 견디지 못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긴 시간 집중하는 능력이 약화되면서 짧고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결과다. 극단적인 예지만, 중국인 1인이 하루 평균 2시간 48분을 숏폼에 쓰는 세상에서 게임은 복잡하고 어려운 여가 활동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체 효과’다. 한정된 여가 시간 내에서 숏폼과 게임은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둘 다 디지털 기기로 즐기는 여가이기에 경쟁은 더욱 직접적이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핵심 이용층과 숏폼의 주 소비층이 10~30대로 겹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상황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체감하는 쪽은 게임사들이다. 과거 게임업계는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을 주요 경쟁자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같은 전혀 다른 플랫폼과도 사용자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소위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관점에서 숏폼은 게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위기를 인식한 게임사들은 플레이 타임이 짧은 하이퍼캐주얼 게임을 늘리거나, 게임 플레이 하이라이트를 숏폼 영상으로 만들어 유저를 끌어들이는 등, 전반적인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5분 내외의 빠른 매치나 즉석 플레이 모드를 추가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재미'로 차별화를 꾀하는 셈이다.
이제는 규제마저 닮아가는 숏폼과 게임
흥미로운 점은 숏폼이 게임 이용시간을 잠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각국 정부의 규제 접근법까지 게임과 유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게임만의 문제로 여겨지던 '중독'이나 '과몰입' 우려가 이제는 숏폼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규제 선진국(?)인 중국은 가장 적극적으로 숏폼 규제에 나섰다.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Douyin)'은 2019년부터 14세 미만 청소년에게 하루 40분 이용 제한을 두고, 밤 10시부터 익일 6시까지는 접속을 차단하는 '청소년 모드'를 시행 중이다. 2021년에는 청소년 이용자의 실명인증 및 시간제한을 더욱 엄격히 적용했다.
이 조치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중국의 게임 셧다운제와 거의 동일한 형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시간을 제한해왔고, 2021년부터는 청소년 온라인 게임 이용을 주말과 공휴일에만 하루 1시간으로 제한하는 더 강력한 규제를 시행했다. 이제 숏폼도 같은 규제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스마트폰 자체의 이용을 연령별로 하루 2시간까지 제한하는 포괄 규제안까지 제안했다.
서구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국 유타주는 2023년 미국 최초로 "소셜미디어 규제법"을 제정했다. 18세 미만은 보호자 동의 없이 SNS 계정을 만들 수 없고, 밤 10시 30분부터 새벽 6시 30분까지는 이용이 금지된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모든 숏폼 플랫폼을 포함하는 이 법은 사실상 청소년의 숏폼 야간 이용을 법적으로 '통금'한 최초 사례다. 아칸소주, 텍사스주 등에서도 유사 법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도 2024년부터 발효된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틱톡과 유튜브 같은 대형 플랫폼에 17세 이하 이용자에 대한 과도한 맞춤형 알고리즘 노출을 줄이고 사용시간 관리 도구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프랑스는 15세 미만이 부모 동의 없이 SNS 계정을 개설할 수 없도록 했고, 영국은 아동용 온라인코드를 통해 13세 미만 어린이의 데이터 수집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숏폼에 대한 별도 법적 규제는 없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SNS 중독 방지 캠페인과 학부모 단체의 "틱톡 사용시간 제한 앱" 활용 권장 등 소프트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는 게임 과몰입 문제에 대한 초기 대응과 비슷한 양상이다.
한때 게임에만 적용되던 중독 담론과 규제 프레임이 이제는 숏폼에도 확장되고 있다.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한 시간 제한, 야간 이용 금지, 부모 동의 의무화 등 게임 규제에서 보던 익숙한 방식들이 그대로 숏폼 규제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길을 이미 걸어왔다
게임과 숏폼의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 규제에서 보았듯, 이는 단순한 청소년 보호 조치를 넘어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게임 셧다운제가 그랬듯, 숏폼 규제도 처음에는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숏폼은 게임보다 더 넓은 연령층에서 이용되고, 정보 전달이나 창작 활동과 같은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또한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한 국가의 규제를 피해갈 여지가 더 크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지털 콘텐츠가 사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이처럼 숏폼은 이용자 시간을 두고 게임과 경쟁할 뿐 아니라, 게임이 걸어온 규제의 길까지 따라가는 모습이다. 게임 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경쟁자인 숏폼이 같은 규제 부담을 안게 된다는 점에서 형평성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다.
게임이든 숏폼이든, 디지털 여가 활동이 가진 즐거움과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이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규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선택하고,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는 교육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여가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게임사들의 진짜 적은 같은 업계의 경쟁자가 아니라, 이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빼앗아가는 숏폼 플랫폼이다. 이용자들은 이미 '쉬운 즐거움'에 중독되었다. 게임이 이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고, 새로운 규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가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도경 국회 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