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행복을 위해’ 굿피플 발달장애인 자립지원 나선다

입력 2025-04-10 16:01 수정 2025-04-10 16:04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회장 김천수)가 10일 개최한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비전공유회’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저희 회사에는 쿠키를 만드는 제과사업팀과 커피 드립백을 만드는 커피사업팀이 있어요. 저는 제과사업팀에서 쿠키성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브라보비버 유강우 사원)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콘퍼런스홀. 흔한 기업 직무 홍보 행사라 여길만한 이야기로 시작된 무대는 조금씩 특별함으로 채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해 주어진 업무를 보는 것. 발달장애인 유강우씨는 직장인 모두에게 평범한 일처럼 느껴지는 이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꿈같을 수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전했다.
발표 중인 유강우씨. 신석현 포토그래퍼

“회사를 다니면서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새로운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고, 일을 하게 되니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용돈도 드리고 제 용돈은 아껴 써서 저축도 하고 있어요. 직장에선 자기만의 속도로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원은 열심히 일해도 속도가 느릴 수 있어요. 우리 모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씨가 강연자로 나선 현장은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회장 김천수)가 개최한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비전공유회’였다. 굿피플이 발달장애인 고용증진 체계 구축, 발달장애 예비 직장인 교육, 건강·여가 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들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유씨에 이어 등단한 사람은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 성낙영씨였다. 그는 “부모 입장에서 발달장애인 자녀가 일을 하는 것은 경제적 심리적 사회관계적으로 말로 다할 수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모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라며 “자녀의 성장 발달이 늦더라도 희망을 갖고 각 성장시기별로 나타나는 증상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김승섭(사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발달장애인은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부터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람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에 지원의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들의 사회적 자립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 긍정적 변화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가슴 아픈 소식이 끊임없이 뉴스로 전달되는 시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이 다했을 때 남겨질 자녀가 걱정돼 두려웠던 부모에게 부재한 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라며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선 그런 두려움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인이 일자리를 갖는 것은 이들이 소득을 올려 자존감을 확보하고 사회 관계를 확장하며 사회 구성원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며 “그들의 가족에게는 돌봄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삶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며 지역사회에는 경제활동을 보다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취업률은 각각 29.1% 29.5%로 장애인 전체 평균 33.8%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월평균 소득 수준도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에 그쳤다. 국내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은 43만여명에 달한다(2023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

반면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기 위해 부모가 포기해야 하는 일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발달장애인 부모의 돌봄 부담에 관한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직장을 그만 둔 적이 있다’(68.4%) ‘본인의 병원 진료 또는 치료를 포기한 적이 있다’(68.7%) ‘배우자/본인 부모의 병원 치료나 간병을 포기한 적이 있다’(72%) ‘비장애자녀의 주요 행사(입학식 졸업식 등) 참석을 포기한 적이 있다’(69.1%) 항목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날 굿피플은 발달장애인 고용증진 체계 구축, 발달장애 예비 직장인 교육, 건강·여가 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들을 소개했다. 현재 베어베터, 피치마켓, 함께웃는재단, 시소감각통합상담연구소, 소통과지원연구소 등 5개 기관과 협력해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굿피플은 향후 발달장애인 아동청소년에게 예비 직장인 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교재를 제작해 배포하고, 특수교사들을 위한 워크숍과 연구 모임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비롯한 고용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직무 교육 콘텐츠를 교재와 가상현실(VR) 콘텐츠로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다.

경제, 인간관계,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근속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전문적인 사례관리 상담 및 치료를 제공한다. 하반기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발달장애 직장인 페스티벌’도 개최한다.

현장에는 굿피플 나눔대사로 활동 중인 남보라(사진) 배우도 참석했다. 남보라는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 온 누나로서 때로는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데도 일자리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다”며 “지금은 일터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동생이 자랑스럽다”고 소개했다.

이어 “발달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업이 다른 지원 사업에 비해 쉽지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같이 손잡고 나아간다면 더 큰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작은 반딧불이 모여 큰 불빛을 만들어 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천수(사진) 회장은 “모든 발달장애인이 일터에서 성장과 성취감을 누리는 ‘보통의 삶’을 통해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따뜻한 시선과 지지가 발달장애인들의 자립 여정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굿피플은 사업 소개와 함께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조성한 ‘반딧불 기금’을 설명하고 기업의 참여를 독려했다. 반딧불은 굿피플이 진행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의 대표 상징이다. 반딧불에는 발달장애인이 반딧불처럼 스스로 빛을 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반딧불 기금에 참여한 기업에게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기업의 이름이 노출된다. 새롭게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하거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기획하는 경우에도 굿피플을 비롯한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수행 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